페라리 스쿠데리아! 잠실 카트장을 달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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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에 대한 소중한 기억은 2007년 일본 주재시절 이탈리아 페라리 본사가 있는 마르넬로시를 방문했을 때 생겼다. 페라리 창업 60주년을 맞아 주요 고객과 언론인을 초청한 자리다. 다행히 일본 자동차기자단 소속이라 이런 행운을 잡았다. 한국은 그때 페라리를 공식 수입하는 절차를 밟고 있을 때다.

소중한 기억은 페라리 본사 옆에 있는 피오라노 서킷 주행 체험과 마이클 슈마허의 사인이다. 꿈에 그린 서킷에서 F430을 타본 것도 좋았지만 더한 행운은 슈마허에게 받은 친필 사인이다. 그것도 6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 기자단에게 지급한 목걸이용 티켓에 받았다. 슈마허 팬에게 보여줬더니 ‘혼모노다네(진짜네)’라는 일본어가 들려온다. 일본에서 인터넷 옥션에 올리면 꽤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일본 친구의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언제가 만들 ‘KIM’S 뮤지엄‘을 위해 유혹을 자제했다.

더한 재미는 피오라노 서킷 주행 다음의 시가지 주행이었다. V12엔진을 단 612스카글리에티로 도심을 서킷처럼 했다.물론 기자가 아닌 전문드라이버다. 엔초 페라리가 자동차를 개발한 뒤 마르넬로 시가지를 서킷처럼 광폭하게 운전했던 시가지 3㎞의 주행이었다. 전문 드라이버가 좁은 2차선 도로를 드리프트까지 곁들여 몰아줬다. 나중에 운전을 교대하면서 등에는 식은땀까지 흘렀다. 당시 테스트 드라이버 왈 “예전 엔초 페라리가 워낙 이 도로에서 신차로 과하게 몰아붙여 이곳 주민들은 페라리가 보이면 알아서 피한다. 도심 드리프트에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말한 기억이 새롭다.

당시 일본과 한국의 국력 차이를 느낀 것이 한가지 있다. 동행한 일본 자동차기자단 부회장은 저녁 자리에서 ’아! 페라리 20주년 행사에 왔던 기억이 새롭네...”라고 말했다. 40년 전이다. 하긴 그의 나이가 60대 후반이니... 그동안 그가 피오라노 서킷 등에서 페라리를 장난감 다루듯 타본 것만 해도 수 십번이라고 한다. 핸들 한 번 제대로 잡아보기 어려운 국내 현실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천양지차다.


F1 머신의 결정체 페라리 430 스쿠데리아

서론이 길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F1 머신의 기술을 거의 그대로 도입했다는 페라리 430 스쿠데리아다. 만남의 장소는 그 유명한(?) 서울 잠실 카트 경기장이다. 이거야말로 해외 토픽 특종감이다. 물론 한국 어느 곳에서도 페라리를 제대로 몰아 볼 수 없지만 카트 경기장은 정말 희극에 가깝다. F430을 5㎞에 달하는 피오라노 서킷에서 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스쿠데리아는 한 마디로 괴물이다. 평상시 출퇴근으로 쓸 경우 몇 달 이내 운전자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도심 정체에 한 번 걸리면 바로 정비소에 입고해야 한다.엔진오일과 변속기 등을 손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거운 핸들에 딱딱한 시트 등 운전의 고통이 말이 아닐 게다.

이번 페라리 행사에서는 직접 시승뿐 아니라 F1페라리팀의 네 번째 드라이버인 마크 제네(Marc Gene) 옆자리 동승해 이 차의 재미를 느끼는 기회도 생겼다.

페라리는 자동차 업계에 이름을 올리는 게 어색하다. 쉽게 말해 값비싼 어른들의 기호품 또는 장난감 목록에 올리는 것이 맞다. 마르넬로 본사에서 들었던 페라리 고객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다. 페라리 고객은 한 달에 한번 정도 타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것. 일년 동안 한 번도 안탄 고객도 10%에 달한다나. 절대 출퇴근용으로는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써서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출퇴근용으로 쓸 경우 정비소를 집 옆에 두고 살아야 한다.물론 중환자실도.

페라리는 많이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연간 판매대수를 8000대에서 통제한다. 그래도 충분히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더구나 희소성이라는 마케팅 전략과도 잘 어울린다. 대표적인 게 엔초 페라리다. 딱 399대만 생산했다. 목록까지 매겼으니 그게 어디 차인가, 값비싼 보석일 뿐이다. 그것도 20억원짜리 커다란 보석이다. 페라리 시장은 국력과 비슷하다. 최대 시장은 미국이고 다음은 독일,영국,이탈리아, 일본 순이다.

스쿠데리아는 F430을 베이스로 무게를 100㎏ 줄여 F1 머신 성능을 내도록 한 게 특징이다.

2인승 베를리네타(쿠페) 모델인 이 차는 ‘F430’, ‘F430 스파이더’와 함께 V8 엔진의 라인업을 완성한 모델이다. F1 챔피언인 마이클 슈마허가 초기 개발 단계부터 테스트 드라이빙 과정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4.3L 503마력 V8엔진으로 3.6초에 시속 100km까지 질주한다.

차량 중량은 현대차 베르나급 소형차와 비슷한 1250kg에 불과하다. 1마력당 무게비가 2.45kg로 넘치는 파워를 일반인들은 제어하기 힘들 정도다.


엔진의 굉음은 F1머신 그대로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면 저음의 페라리 소리가 들린다. 엔진이 차량 중앙에 달린 미드쉽인 이 차는 시동소리가 F1 머신만큼 굉음은 아니다. 뉴트럴(N)은 좌우 패들 시프트 두 개를 동시에 당기면 된다. 오른쪽 패들을 당기면 1단. 드디어 출발이다. 50m에서 또 패들을 당겨 2단으로 변속하자 익숙한 천둥소리가 들린다. 바로 F1 경주에서 들었던 익숙한 엔진소리다. 탄천 카트장에선 2단 이상 쓸 수가 없다. 1,2단을 열심히 바꾸면서 타이어를 미끄러지게 하려고 애를 썼다. 장애물 코스에서 겨우 드리프트 비슷하게 타이어가 살짝 미끄러진다.

이 장난감(?)의 가장 큰 특징은 변속 시간이다. F1 머신에서 그대로 도입한 슈퍼패스트(Superfast) 기어박스를 통해 변속 시간이 0.06초로 단축됐다. 일반 차량은 통상 0.5초 걸린다.

다음은 제네 드라이버와 동승이다. 스페인출신인 그의 얼굴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세상에 페라리로 카트장을 달리다니...’ 이런 말이 얼굴에 그대로 써 있다. 함께 세 바퀴를 달린다. 첫 바퀴는 그냥 그랬지만 두 바퀴째부터는 장난이 아니다. F1선수가 보통 4∼5G의 중력을 받는다고 한다. 이날 이 좁은 곳에서도 2G는 충분히 느껴진다. 운전석에서 그의 손과 발만 열심히 바라봤다. 역시나... 통상 자동 변속기 차량에서 놀기만 하는 왼발로 브레이킹을 한다. 특히 드리프트에서는 필수다. (※요 부분은 절대 일반 운전자가 따라 하면 안된다. 사고 위험성이 너무 높다.) 작은 핸들을 가볍게 잡은 두 손으 180도 꺾기를 넘어 270도까지 핸들을 놓지 않고 코너링을 한다.

정신없이 4억7000만원짜리 장남감을 이리저리 돌린다. 드리프트는 엔진 출력이 타이어를 제압해야 기본적으로 가능하다. 이렇게 두 바퀴를 탔더니 금방 배가 고파진다. F1 드라이버는 약 두 시간의 경주를 끝내면 체중이 2∼3㎏ 주는 게 정상이라나.

스쿠데리아는 일반 자가용으로는 절대 못 쓴다. 하지만 남과 다른 나를 각인시키고 그리고 세상에 나 하나뿐이라는 존재감을 주기엔 이보다 가치있는 장남감이 어디 있을까 한다.

김태진 기자

<페라리 430 스쿠데리아 제원>
크기: 전장×전폭×전고: 4,512×1,923×1,199mm
휠 베이스 : 2600mm
차량 중량 : 1250kg
구동방식 : 미드쉽(MR)
엔진형식 : 4,308cc V8 DOHC 32밸브
최고출력 : 510ps/8,500rpm、
최대토크: 48.0kgㆍm/5250rpm
브레이크 : 브렘보제
타이어 : 피렐리 235/35ZR19
전후 중량 배분 : 43 : 57
최고속도 : 320km/h
0-100km/h : 3.6초 이하
차량 가격:4억7000만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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