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서울 축구전용구장 필요없다 - 반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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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2년 대비 서울시 축구전용경기장 건립여부를 두고 월드컵조직위원회와 서울시가 대립하고 있다.

조직위원회는 어느모로 보나 서울시에서 당연히 전용구장을 지어 21세기 벽두의 국민적 행사에 동참해야 한다고 한다.

반면 서울시는 빚에 쪼들린 살림과 월드컵 유치신청 당시의 조건을 들어 기존 체육시설과 계획중인 시설을 보완해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용구장 건립문제는 '국민의 여망' 이니 하는 허장 (虛裝) 과 인기투표식의 결정에 의해 졸속처리할 일이 아니다.

우선 본인은 유독 서울만이 월드컵의 양대 (兩大) 하이라이트인 개회식을 치러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는 도시라는 논리에 거부감과 더불어 가치기준의 이중성을 느낀다.

왜 우리는 지방화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아직도 지방을 적극적인 대안 (代案) 으로 생각지 못하는가.

그들에게 전용구장과 편의시설이 없어서인가.

정 이것이 문제가 되면 서울과 지근거리인 수도권 도시면 된다.

우리는 신구 (新舊)가 잘 조화된 지방의 건축도시 바르셀로나를 보면서 감탄한 것이 엊그제였다.

이를테면 세계문화유산 화성 (華城) 과 전용구장을 갖추게 될 수원은 불가능한가.

일본만 해도 월드컵은 지방도시에서 열린다.

또 다른 의문은 돈 씀씀이와 관련해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회의 (懷疑) 때문이다.

전용구장 건립에 따른 서울시의 부담규모가 3천억원에 이른다.

이를테면 이 돈을 기금화해 그 이자수익만 활용해도, 취약계층에 대한 방문간호서비스를 현재 수준의 8배로, 그리고 사각지대인 노인요양서비스를 서울시 전체 필요규모의 3분의1 이상으로 획기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의 복지가 태국의 60% 수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또 다른 문제는 전용구장의 입지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뒤편에 있는 47만평이 그린벨트라는 점이다.

이제 서울시에 이런 땅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지역에 또 다시 대규모 경기장을 짓게 되면 지역적으로 편중된 국제규모의 경기장을 두 개나 갖게 돼 공간계획 측면에서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굳이 서울에서 월드컵 개막식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현재 그 활용도가 저조한 기존시설 혹은 계획중인 시설을 보완해 행사를 치르는 것이 현명하다.

혹자는 전용구장이 아니라서 축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없다고 한다.

개막식 당일의 6만5천 관중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세계에 행사를 중계할 카메라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월드컵 유치 신청 당시에도 우리 정부는 잠실주경기장을 개.보수해 개막식장과 경기장으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했는데 이제 와서 갑작스럽게 방침을 바꾸어 시민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러한 변덕은 전용구장 건립을 위해 필요한 추가용지의 협의매입 과정에서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다.

아직도 힘의 논리를 앞세우며 제4, 제5의 삼풍행진을 계속하려는가.

이제는 엘리트와 행사위주의 체육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식축구장을 축구경기장으로 전용해 올림픽을 치른 로스앤젤레스의 예, 그리고 종합경기장을 이용해 98년 월드컵을 치르려는 프랑스의 예도 참고하자. 멀쩡한 시설을 개.보수하는 비용만도 최소 5백억원이다.

성에는 안 차지만 절제하면서 행사를 치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울에 전용구장을 설립해야만 축구가 '중흥' 되리라는 환상도 버리자. 이혁주 [서울산업대교수 도시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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