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당당한 이류] 끝. 탤런트 양택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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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 나오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한복판에서 주인공의 다짐이 주문처럼 이어진다. 그래, 이제 나는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에는 경로우대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른바 '낙엽줄'. 면면을 보면 '철지난' 낙엽송이라기보다 여전히 '철없는' 상록수들이다. 그 천진함에서 읽히는 것도 연민이 아니라 희망이다. 양택조는 그 낙엽줄 한복판의 용감한 이야기 소년이다.

그와의 개인적 인연. 방송사 복도에서 만난 노신사가 어느 날 내게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오래전에 책을 내면서 표지로 찍었던 사진이다. "우리 아들이 찍은 거라오." 그 사진기자가 양택조의 자식이었다는 사실보다 그 사진을 고이 지녔다가 곱게 전해준 부자의 넉넉한 마음이 고마웠다.

칼럼의 취지를 원로와의 대화라고 풀었더니 곧바로 손사래를 친다. "내가 무슨 원로야?"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은 노청년의 표정으로 흐뭇하게 눈을 흘긴다.

아버지(양백명)는 극작가이자 연극연출가, 어머니(문정복)는 알려진 대로 북의 인민배우였다. 재작년 그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쪽 인사는 어머니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배웁네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기억이 그에겐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는 단 한번 학교로 찾아왔다. 해방되던 해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지만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처럼 나무 뒤에 숨어서 어머니는 외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던 것일까. 그날 방과 후에 할머니에게서 선물을 전해 받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한양대 재학 중 입대한 그는 1962년 가을 제대한 뒤 복학하지 못했다. 풍비박산. 군대 가 있는 동안 사기를 당해 집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이듬해 봄 부친을 잘 아는 유치진 선생의 서울연극아카데미(서울예대 전신)에 입학한다. 졸업 후 몇 편의 연극을 했지만 돈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피골이 상접한 채로 충무로를 기웃거렸다. 다행히 이모부인 이만희 감독 밑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이모는 유명한 배우였던 문정숙이다.) 당시 '흑맥'이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을 찾지 못해 제작진이 고심 중인 때였다. 남산에서 눈에 번쩍 띄는 여자를 발견했다. 이름은 이순임. 60년대 은막의 여왕 문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길거리 캐스팅의 원조 아니냐고 물었더니 다시 소년처럼 웃는다.

안목은 인정받았지만 조감독 역시 생활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보니 영화더빙을 전문으로 하는 성우들의 수입이 괜찮았다. 어쩌다가 노역을 한번 맡아 했는데 감독의 칭찬이 대단했다. 그러나 정식 성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을 계속하진 못했다. 아, 자격증. 드디어 TBC 성우 4기 공채에 도전하여 당당하게 뽑힌다. 방송국 성우 6개월 전속이 끝나기 무섭게 충무로로 향했다. 이젠 떳떳하게 후시녹음 할 수 있겠지.

택조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주로 독고성 등의 악역을 맡았다. 돈이 그를 친구 삼기 시작했다. 성우이자 캐스팅디렉터(당시엔 도급이라 불렀다)로 20년을 버텼다.

배우 김희라의 추천으로 TV에도 얼굴을 들여놓게 된다. 3840유격대가 첫 작품이다. 행운은 부지런한 사람의 편이라 했던가. 느닷없이 베스트극장의 주인공역이 맡겨졌다. 선우완 연출의 '대역인간'에서 사이비 교주 역. "나도 몰랐는데 분장하고 거울을 보니 카리스마가 있더라."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주말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의 최불암 친구 양씨역이다. 나이든 시청자라면 박원숙을 사이에 두고 황혼의 로맨스를 벌이던 따뜻한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어떤 섬에서 촬영할 때 그 동네 이장의 턱이 좀 나왔는데 말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그걸 따라 한 게 빅히트였다. 원래는 몇 주 나오고 마는 역이었는데 시청자 반응이 달아오르니 결국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고정출연했다. 올해가 그는 최전성기다. 60대 중반에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주연을 맡은 기분은 어땠을까. "나이 들수록 정신차려야겠더라." 그러면서 슬쩍 한 마디 추가한다. "관성으로 사는 건 싫다."

그는 스스로 미친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4살 난 손녀를 하루라도 못 보면 미쳐버리는 할아버지라는 뜻이란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영락없는 귀여운 노인이다. 그가 노인이 된 건 시간의 힘(단순미래의 결과)이지만 '귀엽게' 늙은 건 아무래도 인간의 뜻(의지미래의 소산)일 성싶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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