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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신한금융지주 이끄는 ‘상업고등학교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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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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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금융권에선 신한지주를 가리켜 ‘상고 DNA(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물론 신한금융지주는 이런 시선을 부담스러워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한지주 계열사의 한 간부는 “상고를 나왔다고 서로 끌어주거나 밀어주는 관행은 없다”며 “실적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상고 출신을 의도적으로 우대한 게 아니라 실적과 능력을 중시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경쟁력 있는 상고 출신들이 학력 차별을 안 받고 CEO로 올라갔다는 얘기다.

실제 상고 출신들이 잘나가는 가장 큰 요인은 신한지주가 원칙으로 삼은 ‘학력 파괴’에서 찾을 수 있다. 1982년 재일동포들이 신한은행을 설립할 때 택한 것이 ‘소수 정예주의’였다. 다른 은행보다 봉급을 더 주는 대신 능력 있는 인재들을 영입했고, 여기엔 대졸 출신뿐 아니라 상고 출신도 많았다. 『대한민국 은행을 바꾼 신한은행 방식』의 저자인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생 은행이 살아남기 위해선 영업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능력 있는 상고 출신들이 중용됐다”며 “능력 위주의 인사는 신한은행이 성공을 거둔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상고 출신들만이 가진 특성도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에 명문 상고를 나온 사람들은 대체로 능력이 뛰어났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사람들일수록 성취욕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잠재력은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 등 기존의 5대 시중은행보다는 새로운 기회의 땅에서 발휘하기 쉬웠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계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을 쥐락펴락했던 시절 시중은행들에선 학벌과 지연 위주의 인사가 이뤄졌다”며 “좋은 학교를 못 나오면 본점 주요 부서에 근무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신한지주에서 상고 출신만 CEO가 된 것은 아니다. 대졸 출신을 역차별하는 분위기는 없다. 이인호 지주 사장이나 이동걸 전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은 대학 출신이다. 중용의 포인트는 학력보다는 영업력과 충성심이다. 신상훈 현 행장은 39세인 1986년 신한은행의 최연소 지점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당시 기업에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경영 상황을 컨설팅하는 방식을 도입해 성과를 거뒀다. 전국 영업점 평가에서 두번이나 대상을 차지했다. 이백순 내정인도 비슷하다. 테헤란로 기업금융지점장 시절 대상을 받았다.

또 이들은 창립멤버이거나 설립 초기에 합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한은행이 발간한 『신한은행 20년사』엔 당시 창립 행원의 이름이 나와 있다. 라응찬·이인호·신상훈·이재우·이휴원 등 현 그룹 수뇌부가 대부분 포함돼 있다. 이백순 내정인은 창립멤버는 아니지만 창립 직후 합류했다.

CEO들에겐 대주주들이 있는 일본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신 행장은 오사카지점장, 이 내정인은 도쿄지점장을 거쳤다. 비서실 경력도 있다. 신 행장은 비서과장, 이 내정인은 비서실장을 지냈다. 비서실이란 CEO의 최측근 조직이다. 이곳을 거쳤다면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이미 검증된 셈이다.

외부 청탁을 받아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라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는 80년대 신군부에 줄을 댄 직원을 한직으로 좌천시킨 적도 있다.

신한의 상고 전성시대는 언제까지 갈까. 지금도 신한은행의 전무 이상 임원진 12명 중 4명이 상고·농고 출신이다. 가능성은 있지만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김호기 교수는 “사회 각 분야에서 상고 출신이 대거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지금이 거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했다. 80년대 들어선 대졸자가 늘어나면서 전처럼 상고에 뛰어난 인재가 몰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당수 상고도 이미 일반계 학교로 전환했다. 신한은행이 고졸 출신을 초급 행원으로 뽑은 것도 98년이 마지막이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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