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음악회 여름방학 숙제로 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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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올 여름, 음악계의 화두 (話頭) 는 청소년음악회다.

여름방학을 맞아 각 공연장에는 이틀이 멀다하고 '청소년음악회' 가 열리고 신문사에는 청소년들로부터 '볼만한 음악공연' 을 안내해 달라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7.8월은 더 이상 음악계의 하한기 (夏閑期)가 아니다.

현장교육의 하나로 음악회 감상문 제출이 중.고교의 여름방학 과제로 채택된 것은 지난 95년. 그후부터 7.8월의 음악공연은 몰리는 청소년들 덕분에 짭짤한 수익을 보았고 올해 들어서는 아예 각 공연장.공연단체.공연기획사에서 방학 특수 (特需) 를 겨냥해 '청소년을 위한…' 이란 타이틀을 내건 음악회 상품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예술의전당은 지난 7월초 서울시내 중.고교 음악교사들을 초청, 청소년 음악축제에 관한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청소년음악회' 는 청소년들이 협연자로 출연하는 음악회' 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지난 94년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금난새와 함께 하는 세계의 음악여행' 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 관객을 위한 해설 곁들인 음악회' 로 의미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청소년의 여름방학 과제를 위한 음악회' 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이런 와중에 아이러니컬한 현상은 여름시즌 음악회의 꽃으로 청소년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KBS교향악단과 서울시향의 팝스콘서트가 '클래식 음악회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각급 학교의 방학과제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사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의 '청소년음악회' 가 더 많다.

예술의전당이 전국문예회관연합회와 공동제작, 전국 순회공연을 가진 '노영심의 음악이야기' 가 그 한 예. 연주단체 (서울내셔널심포니) 의 수준은 접어두고라도 음악회를 TV토크쇼로 착각하는듯한 사회자의 '말잔치' 는 진지한 표정으로 객석을 메운 학생들의 기대치를 채우기엔 미흡했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방학 프로그램이 이 정도라면 상당수의 다른 공연들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이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여름방학 기간중 서울시내 공연장에서 열리는 음악회 객석수를 모두 합해도 중.고교 재학생들의 숫자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 그래서 입석 발행으로 공연장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입장을 못한 학생들이 음악회가 끝난 후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관객들에게 쓰고 난 티켓과 팜플렛을 구걸하는 사태마저 빚어지고 있다.

학생들을 공연장으로 내모는 것으로 음악교육의 문제점이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안이하고 성급하다.

청소년음악회가 미래의 청중 개발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으려면 여름방학 과제로 때우기보다는 학기중에 실시하는 상설공연으로 분산해야 한다.

또 매월 1회 실시하고 있는 예술의전당의 '금난새의 음악여행' 역시 청소년들의 폭발적 수요를 감안해 프로그램을 대폭 증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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