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작가 김소진 부인 함정임씨 소설 '동행'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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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입덧으로 핼쑥해진 나를 더욱 미안스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참기 어려워 나는 그 앞에서 구역질을 하지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메스꺼움을 가까스로 안으로 삭이며 내 몸이 그의 딱딱하게 부푼 배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는 그의 볼에 내 볼을 가져다대었다.

볼을 마주대고 있는 이 순간 세상이 정지해버리고, 그리하여 그도 나도 함께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기적처럼, 전설처럼…. "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한사람이 돼 삶과 죽음을 함께 할 수는 없을까. 그런 전설이 정녕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기적은 없는가.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지난 4월 타계한 작가 김소진. 그의 병상은 동료작가이자 아내인 함정임씨가 지키고 있었다.

임신 3개월쯤 된 몸으로 입덧과 눈물을 참아가며. 자라나는 생명을 몸안에 두고 그 생명을 주고 꺼져가는 또 한 생명을 바라보는 참담함. 그 참담한 모습이 병문안 온 동료문인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던 함씨가 최근 소설 '동행' 을 '문학동네' 가을호에 발표했다.

"그는 언제나 내게 지는 듯이 이기는 강한 사람이었고 겉보기엔 아무 것도 없는 듯이 가냘프게 보이면서도 안으로 모든 것을 갖춘 올찬 사람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맨몸으로 시작하다시피한 우리의 생활이 올해부터는 어느 정도 안정 국면에 들어갈 참이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아이, 우리 가족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해 그와 내가 열어가야 할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그만큼 넘치고 있었다."

함씨는 이 작품에서 5년여의 결혼 생활을 압축해서 남편의 인간성, 작품세계를 드러내면서 죽음 앞에 직면한 인간정신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신뢰와 믿음이 충만했던 한 가족의 삶은 올 봄 남편의 암으로 여지없이 깨어지게 된다.

지나간 봄은 잔인했다고 누가 말했던가.

새싹이 돋고 떠났던 새들이 돌아오고 햇살이 바람 따라 넓게넓게 퍼져가는데 봄에 임은 대꼬챙이 같이 마르며 죽어가고 있다.

해서 함씨는 지난 봄을 '잔인을 넘어서는 무한 불행과 악무한의 고독과 두려움' 을 무어라 이를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때때로 악마의 꾐에 빠지든지 한판 승부를 벌이고픈 충동에 빠지곤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과 영혼의 끝간데, 그 정점을 보기 위해서이다.

함씨도 이 작품에서 자신이나 남편 모두 악마와의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며 자신들의 명징한 정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배 위에 서로의 손을 포개고 우리는 숨죽여 흐느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눈물겹게도 그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 그가 나는 한없이 고마웠다.

뱃속의 아이를 의지해서 그가 소생하기만 한다면. " 남편은 아기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작품에서는 줄곧 화두로 삼아온 것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몸부림이었지만 역으로 간절히 한 아이의 아비가 되기를 바라는 남편. 그 아이로 인해 남편이 기적처럼 소생하기를 바랐던 함씨. 그러나 남편도 아이도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세상이 쪼개지듯 쩡!

하는 소리만 귀에 선연히 남겨두고 어둔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한 몸이었던 그 생명들을 떠나보내며 함씨는 이렇게 빌고 있다.

"태어나지 못한 불쌍한 아가야. 미처 너를 돌보지 못한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아빠가 떠날 낯설고 외로운 길, 길동무나 같이하며…내세를 기약하며 그동안 부디 편안하여라. "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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