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도 추위도 잊은 3시간 줄 선 그들은 이미 성자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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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김진경 기자(오른쪽에서 셋째)가 19일 ‘명동의 기적’ 행렬에 참여했다. 김 기자는 행렬 끝에서 명동대성당에 이르는 3시간10분 동안 ‘사랑·나눔·감동’ 등 김수환 추기경이 만든 사랑의 기적을 만났다. [김경빈 기자]

“두세 시간쯤 기다리면 될까요?” “난 네 시간이라고 듣고 왔는데….”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금세 말문을 텄다. 1분에 열 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 느린 속도에도 이상하리 만큼 짜증내는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앞쪽에 선 할머니 두 분이 연방 웃음을 터뜨렸다. 친한 친구였던 이들은 7년 만에 만났다. “힘들게 사느라 연락이 끊어져 마음속으로 그리워만 했다”는 두 분은 명동성당으로 오던 지하철 출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고 했다. 송수자(65)씨는 “친구(박정순·65)를 보고 너무 반가워 서로 얼굴을 비비다가 화장이 다 지워졌다”며 “이게 기적이 아니고 뭐냐”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날 장기기증 서약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명동역과 세종호텔을 지난 낮 12시, 퇴계로엔 칼바람이 몰아쳤다. 내복까지 입고 나왔지만 찬 기운이 송곳처럼 옷 사이를 파고들었다. 펜을 잡고 있는 손가락이 곱아 글씨를 쓰기 힘들었다. 손을 호호 불고 있자 앞에 있던 송 할머니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건넸다.

“기자 아가씨, 손 시리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자 “그럼 장갑 대신 내 손이라도 받아”라며 양손으로 기자의 손을 꼭 감쌌다. 따뜻했다.

추모객들에겐 식사와 화장실 가는 일도 문제였다. 점심시간이었지만 두 시간 동안 서 있던 줄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뒤에 서 있던 장효빈(8·여)양이 엄마에게 돈을 받아 호두과자 한 봉지를 샀다. 친구와 나눠 먹다가 쭈뼛거리며 기자에게 다가왔다. “배고프시죠? 이거 하나 드세요.” 호두과자 한 알이었지만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

평화방송 맞은편 언덕을 올라가는 길, 왼쪽에 카페가 있었다. 사람들이 카페 화장실로 몰려들었다. 기자도 들어갔다. 손님이 많은 점심때라 난처할 법도 했지만, 사장 정연행(44)씨는 “편하게 마음껏 쓰시라”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화장실로 안내했다.

“내 자리가 어디 갔지?” 화장실에 다녀온 뒤 자리를 놓친 이화자(68·여)씨가 안절부절못했다. 대열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에 서시라”며 자리를 내줬다.

오후 1시, 명동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언 손은 이미 감각이 없고, 구두 신은 발은 아팠다. 갑자기 누군가 “앞사람 어깨를 두드려 줍시다”고 외쳤다. 수백 명이 주저 없이 앞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식간에 그 긴 행렬의 사람들이 하나가 됐다.

오후 1시30분, 김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된 명동성당 대성당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3시간10분 만이었다. 추기경의 시신 옆에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이에게 내준 두 눈을 평화롭게 감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편안해졌다.

추모에 나선 사람들은 성지순례를 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추모 행렬의 수많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오랜 시간을 추위에 떨며 추기경을 만나려 할까. 손가락으로 묵주를 넘기며 긴 행렬을 동행한 박경혜(45·여)씨는 “그분(추기경)처럼 살고 싶은 용기를 얻으러 왔다”고 했다.

‘그분의 마음이 뭐냐’고 묻자 “이거예요”라며 자신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을 보여줬다.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공부 잘하던 딸이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하게 된 뒤 1년째 이 말을 써 놓고 다닌다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법을 추기경님께 배웠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진경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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