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만해시인학교 시인·독자 130여명 성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십리도 반나절쯤 구경하며 갈만도 하니/구름 속 오솔길이 이리도 그윽한 줄이야/시내 따라 가노라니 물도 다한 곳/꽃도 없는데 숲에서 풍겨오는 아, 산의 향기여" 만해 한용운의 한시 '약사암도중' 이다.

만해가 출가해 불후의 명시집 '님의 침묵' 을 남긴 곳은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산의 향기' 에 한여름 싸리꽃 향기 은은한 그곳에 시인들과 전국의 시 애호가들이 모였다.

시전문계간지 '시와시학' 과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공동으로 지난 5~8일 주최한 제2회 만해시인학교에는 시인및 문학평론가 30여명, 일반독자 1백여명이 참가했다.

비록 3박4일간의 짧은 학교이지만 교장에 시인 고은, 그리고 만해.소월.지용.이육사.윤동주반등 5개 반을 만들어 문인 3명씩이 담임을 맞는 학교 편제를 갖췄다.

한달보름여 중국.티베트.인도등지의 불교성지에서 구도기행을 끝내고 막 돌아온 고은씨는 "고승이요 시인이요 독립투사인 만해의 혼이 있는 백담사는 세계 어느 성지 못지않은 구도의 도량 (道場)" 이라며 "시를 통한 명상과 구도의 시간을 갖자" 고 말했다.

일반 참가자들의 연령과 생업도 가지가지. 중학생 딸과 함께온 초등학교 여교사, 지리산 산자락에서 농사 짓는 중년 남자, 아내와 같이온 중견기업의 임원, 제주도에서 올라온 처녀 등등.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시를 사랑하는 마음. 삶에 꿈과 희망,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든 아름답게 바라보고 가꾸려는 제 각각의 외로운 시심 (詩心) 들이 백담사로 찾아든 것이다.

그렇게 찾아든 마음들이 시인들과 시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대화도 나누고 시를 짓는 방법도 배웠다.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올라온 여연스님으로 부터 초이선사와 다도 (茶道)에 대한 강연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밤 반별 장기자랑. 지역.연령.직업을 초월해 20명 남짓의 반원들이 제각각 호흡을 맞추며 뭔가 '예술' 을 연출해냈다.

그 중 한 반은 백담사에 머물렀던 만해와 일해 (日海.전두환전대통령의 호) 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촌극을 통해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케했다.

충남 공주에서 온 중견시인 나태주씨는 "이렇게 일반 독자들과 어울리다 보면 시인이 된게 무척 보람스런 한편으론 시쓰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고 밝혔다.

백담사 =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