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살아있다] '실내악 삼매경' 쿠모 페스티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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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달 하순 비하우스 첼로앙상블을 이끌고 핀란드 쿠모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6백km 떨어진 호반의 한적한 마을 쿠모. 지난 68년 여름 호수가의 초등학교 강당에 시벨리우스 4중주단의 부부 단원과 두명의 자녀, 세명의 청중이 모여 음악회를 연 것이 쿠모 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실내악 축제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면서 잘츠부르크.글라인데본 등과 함께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대 음악제로 발전했다.

그후 핀란드 정부의 지원을 받아 8백석 규모의 아름다운 목조 콘서트홀도 세워졌다.

페스티벌의 올해 주제는 '미국의 작곡가' .드보르자크.바르토크.쇤베르크.스트라빈스키처럼 유럽서 태어나 미국서 활동했던 작곡가는 물론 번스타인.코플랜드.조지 크럼 등 미국 작곡가의 실내악곡이 연주됐고 아마티 4중주단.바르토크 4중주단, 피아니스트 피터 프랭클.필립 카사르, 바이올리니스트 아나 슈마첸코.데이비드 김.배익환.이미경, 첼리스트 얀 에릭 구스타프슨, 플루티스트 파트릭 갈르와 등이 참석했다.

매년 여름 이곳에 수준높은 연주자와 청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실내악 장르가 추구하는 격의없고 민주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기 때문. 마케팅과 흥행으로 쌓아올린 '명성' 과 높은 개런티를 맞바꾸는 '슈퍼스타' 대신 오로지 '좋은 음악 만들기' 에 매진하는 연주자들이 참석해 자연을 벗삼아 진지하고 친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멋진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뽐내는 아티스트는 한명도 없다.

연주자와 청중 모두 간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실내악 삼매경에 빠져든다.

음악회장 입구에서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들, 아티스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저택을 내놓는 사람들…. 아티스트들은 낮에는 가르치고 저녁에는 연주하고 밤에는 연습한다.

연주자들은 이곳에 오면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연주가 더 잘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초등학교 강당에서 연주했고 학교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매일 적어도 5회의 음악회가 열렸고 모두 발디딜 틈도 없이 많은 청중들로 가득찼다.

10일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50회의 음악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여름 휴가를 대신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날 새벽 3시까지 계속된 음악회에서도 사람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이종영 경희대 교수,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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