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들 복합화 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서울 삼양동 삼성전자 대리점은 간판이 여러개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삼성 가전랜드' 이고, 옆 기둥에는 '011이동전화' '서울이동통신' '케이블TV가입' 등의 조그만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지난 10여년간 TV.냉장고등 가전제품만 취급하던 이곳에는 지난해부터 컴퓨터.통신기기 판매대가 들어섰고 지금은 이동통신과 케이블TV 가입 대행 업무까지 취급하고 있다.

바로크가구 서울 청담동 대리점의 1백평 가까운 매장에는 가구외에 실내 장식용 미술품이 한쪽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올해초 시작한 미술품판매가 이제는 매출의 10%이상 차지할 정도가 됐다.

'한 우물을 파라' 는 격언이 적어도 유통업계에서는 옛날 얘기가 됐다.

가전.주방용품.가구대리점에서부터 자동차 영업소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업종에 걸쳐 매장 복합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한국통신프리텔의 전건호상무는 이에 대해 "가전대리점이나 자동차영업소등이 단일 품목으로는 수지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 이라고 진단하면서 "미국처럼 유통점 복합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고 전망했다.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가전 대리점. 매장은 넓은데 비해 유통수익은 줄면서 특정회사 제품만 취급하는 전속 대리점의 영역이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상당수 대리점은 컴퓨터.통신기기등 정보통신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한 관계자는 "본사에서도 경쟁업체 제품이 아닌한 외제품이나 타사의 소형 가전제품 판매는 눈감아주고 있다" 고 말했다.

특히 이동통신대리점 유치 붐은 마치 미국 서부시대의 골드 러시를 연상케할 정도다.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전자랜드21의 전국 26개 직영점은 지난해말부터 이동통신 대리점을 겸하고 있다.

1년도 못돼 이동전화 가입자 7천명, 무선호출 가입자 8천명을 각각 확보했다.

여기다 케이블TV 가입대행 업무도 취급하고 있는데, 이런 부수업무로 월평균 4천만원 정도의 수익이 생긴다는 것. 전자랜드21 녹번점의 박형근 (朴亨根)점장은 "장기적으로 전자제품 판매보다 이동통신 대리점의 수익율이 높아 질 것으로 보인다" 고 설명했다.

주방용품 전문업체인 우성쉐이프라인과 대우그룹 역시 차세대이동전화로 불리는 개인휴대통신서비스 (PCS) 업체인 한국통신프리텔과 대리점 계약을 체결했다.

각사가 운영하고 있는 전국 유통망을 PCS가입 유치점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 대우의 경우 2천여개에 이르는 전국의 가전대리점.자동차영업소등을 통해 향후 5년간 PCS가입자 2백만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밖에도 눈높이학습의 대교, 정수기업체 웅진코웨이도 PCS가입 대리점 기능을 하기 위한 계약을 추진중이며 기아자동차는 대리점에서 다른 업무를 취급할 수 있도록 아예 정관까지 고쳤다.

치열한 경쟁속의 주유소 역시 변화의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 LG정유의 2천5백개 주유소는 LG텔레콤의 PCS가입 대행업무를 취급키로 했으며 LG전자 가전대리점 2천5백개, LG유통 편의점 4백여개 역시 이에 합류했다.

대리점주인 입장에서는 값비싼 매장과 인력을 최대한 가동해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서비스.제조업체에는 유통망 확충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이같은 매장 복합화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박방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