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4자회담이 나아갈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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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반도에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4자 예비회담이 시작됐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44년만에 서로 총을 맞대고 싸웠던 북한과 중국, 한국과 미국 네나라가 모여 한반도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영원한 평화를 건설하겠다고 모인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무력적화통일노선을 견지해 온 북한이 4자회담을 수용했다는 것은 분명 역사적 사건이다.

이번 예비회담은 한.미 양국이 4자회담을 공동제안한 후 1년4개월만에 성사됐다.

시작이 어려웠던만큼이나 그 과정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고 4자회담을 성공시킬 것인가.

군비통제, 위기관리체제 확립, 대북 경제협력, 평화협정 체결 등에 관해 우리의 입장을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

군비통제는 상대방을 희생시켜 자기측의 안보만 달성하겠다는 냉전적 발상의 대전환을 필요로 한다.

군비통제의 핵심은 협상을 통해 적국의 군사적 강점을 부단히 약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꼭 한번 전쟁한다' 는 전쟁의지도 포기돼야 하고, 거대한 공격적 군사력도 반드시 포기시켜야 한다.

특히 북한이 보유한 화학무기.미사일.장거리포 등은 감축돼야 하며, 기습공격전략은 순수한 방어전략으로 전환돼야 한다.

위기관리체제의 수립 또한 중요하다.

북한의 지도부가 대내위기를 외부로 돌리려 하거나, 탈북자가 증가할 경우 위기가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점점 커질 것이다.

군비통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려면 시간이 소요되므로 그동안에 남북한간의 위기를 방지하고 위기를 성공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남북한 양자 또는 미국.중국이 참여하는 위기관리체제가 구성돼야 한다.

그 일환으로 남북한 정상 또는 4개국 정상회담과 직통전화 가설이 중요한 의제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문제가 거론될 것이다.

북한은 단기적으로 식량난 해결을 위해 4자회담을 수용한만큼 식량문제 해결에 매달릴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난 문제는 민생보다 군사우선을 채택한 국가전략의 결과이므로, 북한의 군사우선정책의 전환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북한에 중유와 경수로를 제공하면서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시킨 핵문제의 해결방식처럼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면서 재래식 군비감축을 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한.미.중 3국이 정부차원의 경제지원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한편 평화협정의 문제는 정전협정의 자구 (字句) 를 수정하거나 군사정전위의 주체를 바꾸는 선에 그쳐서는 안된다.

새로운 평화협정 문안에는 군비통제.위기관리.경제협력 세분야의 합의사항이 모두 담기고, 그것의 이행여부를 확인하고 위반사항을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이다.

92년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교훈은 기본합의문 외에 그 이행여부를 검증할 조항이 동시에 합의되지 않았던 점이다.

앞으로 4자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세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 4자회담은 남북한 양자회담과 다르다는 점이다.

4자회담을 무리하게 북한은 미.북한간 회담으로, 한국은 남북한간 회담으로 몰아가려고 하다 보면 판 자체가 깨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둘째, 한국은 미국.중국.북한과 쌍무접촉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

한.미간에는 철저한 정책공조를 견지해야 하고, 한.중간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전략적 공감대를 도출해야 한다.

한편 북한의 대미 막후 외교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4자회담의 결과 한국의 안보가 지금보다 더욱 확고하게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협상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는 것은 전쟁보다 더 힘들다' 는 격언이 있다.

우리 국민은 한국이 힘의 우위에서 4자회담을 진행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국방태세를 강화하고, 대북한 열세인 무기들을 증강해 나가는 한편 협상담당자들에게 적극적인 성원과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평화는 힘이 있을 때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용섭 국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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