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기아· 크라이슬러의 차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계열사를 28개나 거느린 기아재벌을 가리켜 '국민기업' 이라니 해괴한 일이다.

우선 글로벌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민족주의적 냄새' 가 물씬 풍긴다.

게다가 기아의 경영행태를 말한다면 몸집불리기.상호지급보증등 오너경영의 폐해를 골고루 갖췄다.

지분분산을 따지더라도 그 정도 분산된 상장기업은 수두룩하다.

실적으로는 6개 계열상장회사의 96년 총자산 12조9천억원, 총부채 10조8천억원에 매출은 겨우 10조원, 그나마 적자가 1천억원이 넘었다.

이런 회사가 국민기업인가.

무지한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아의 실패를 전문경영의 실패, 심지어 시장의 실패로 몰아세우며 정부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데는 아연할 수밖에 없다.

흔히 79년 미국 정부가 15억달러의 대출보증으로 크라이슬러를 구제한 예를 든다.

그러나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했다.

크라이슬러 해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첫째, 크라이슬러에는 새롭고 유능한 경영진이 존재했다.

아이아코카가 크라이슬러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 배경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의회 답변을 보자. "이미 쫓겨난 사람들을 십자가에 매달 수는 없지 않은가.

새로 구성한 경영진은 미국 자동차업계 최고의 인재들이다.

" 기아의 경영진은 어떤가.

둘째, 아이아코카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비난은 "시장원리를 신봉한다는 당신이 시장에서 실패한 기업을 도와 달라니 말이 되는가" 였다.

답변이 궁색해진 그는 '심각한 파급효과' 를 이유로 들었다.

빅3 (나머지는 GM과 포드) 중 가장 혁신적인 크라이슬러가 넘어지면 경쟁이 감소하게 되고 그만큼 소비자의 이익이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기아는 현대.대우에 비해 더 혁신적인가.

기아가 도산하면 국내자동차시장의 경쟁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인가.

또 아이아코카는 크라이슬러가 쓰러질 경우 수십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카터정부에 대한 명백한 '협박' 이었다.

레이건시절이었다면 이런 협박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에서 신용공황 운운하는 것도 12월 대선을 앞둔 여야주자들에 대한 협박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미 의회는 대출보증을 승인하는 대신 철저한 당사자부담원칙을 제시했다.

원활한 자금흐름은 정부가 보장하지만 부담은 어디까지나 크라이슬러 임직원.노조.주주.대리점.채권단등이 공동으로 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기아문제도 일반국민에게는 단 1원의 부담도 지우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이다.

권성철[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