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요리]발로 뛰어 배운 '누룽지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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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만삭일 때만 빼곤 항상 요리를 배우러 다녔어요. 제일교포와 결혼해 일본 삿포로에 사는 여동생 집으로 여행을 가서도 그집 시댁어른들과 장보기부터 같이 하며 요리를 배웠죠. 그곳에서 하루나 일주일코스 요리학원도 몇 군데 다녔구요. " 요즘 40대 주부들은 에어로빅을 배운다 여행을 다닌다 하며 부엌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주부 권영희 (權英姬.44.서울송파구문정동올림픽패밀리아파트) 씨에겐 '부엌박이'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요리야말로 그의 유일한 취미이기 때문. 젊었을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새로운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쫓아다니던 '학생' 처지에서 이젠 동네 주부들의 '선생님' 이 된 것. 대학시절 가정관리학을 전공한 것도 약간 도움이 된다고. "한가지 요리라도 여러 사람에게 전수받다보니 소스 만드는 법이나 재료들이 모두 조금씩 다르더라구요. " 국내의 전문학원에서 특별히 배우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배워 나름대로 만든 비법들이 여느 요리전문가 못지 않다는게 주변의 평가다.

누룽지탕도 화교할머니와 홍콩사람에게 각각 배웠던 것. 특히 화교할머니는 권씨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선생님이다.

신혼때 자주 다니던 북창동 중국음식재료상에서 당시 중국식당을 하고 계시던 그분을 소개 받아 20여가지의 요리를 배웠다.

그 메뉴들은 지금까지 가장 잘 이용하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화교들 대부분의 한국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그 할머니와는 대만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후 연락이 끊겼지만 얼마 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됐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다시금 옛생각이 새록새록 나더라고. 누룽지탕은 고소한 누룽지맛 때문에 기름진 중국요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할 만한 음식. 뜨거운 소스를 갓 튀겨낸 누룽지에 끼얹으면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소스가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다.

제때 만들어 먹어야 누룽지가 불지 않는다고. 요즘엔 누룽지도 재료상에 가면 구할 수 있지만 미리 찬밥이 생겼을 때 만들어 놓으면 편하다.

해물들은 물이 아닌 기름에 데쳐야 해물 특유의 맛이 빠져나가지 않고 죽순이나 영콘등 깡통에 들어있는 것들은 한번 데쳐 사용하는 것이 요령이다. "저한텐 요리가 무조건 쉽다고 생각하나봐요. 친구들 집에 가도 맛있는 거 해보라는 소리나 들었지 얻어 먹어본 적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수제비 한그릇이라도 만들어다 주는 이웃이 제일 고맙더군요. " 만드는 것 만큼이나 먹는 것도 좋아한다며 권씨는 웃는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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