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조류 우리식으로 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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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말조심하라. 심청의 아버지는 심봉사가 아니다. ‘시각장애자’ 심학규씨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담긴 ‘봉사’란 단어는 금지다. 마찬가지로 ‘벙어리 삼룡이’는 ‘언어장애자 삼룡이’로 바꾸자. 하긴 미국 진보주의자들은 장애자란 말도 못 마땅해 ‘능력이 다른 사람’이라고 부른다는데. 아울러 심청을 공양미 삼백석에 사서 인당수에 빠뜨린 선원들은 법대로 해서 인신매매와 살인 미수죄로 기소하자.

내친 김에 현대적 진보시각을 더욱 확대해보자. ‘나무꾼과 선녀’에서 우리는 나무꾼의 입장에서 그의 행운만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옷을 뺏기고 객지에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 선녀가 가엽지 않은가. 흥부의 형 놀부가 재판을 통하지 않고 초법적으로 재산을 잃은 것도 억울한 일이다. 착한 콩쥐를 부각하기 위해 미성년자인 팥쥐를 못생기고 마음씨도 나쁘다고 비난한 작가는 명예훼손으로 사법처리돼야 한다. 설사 죄가 있더라도 그들은 모두 권리와 개성을 지닌 고귀한 생명체가 아닌가. <관계기사 39면>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님. 지난해 영문 참가신청서의 존칭란에 미스(Miss)와 미시즈(Mrs)를 나란히 두셨죠. 실수였습니다. “남자는 미스터(Mr) 하나만 쓰면서 여자만 결혼여부에 따라 나누는 것은 여성 차별의 잔재”라는 여권론자들의 주장에 따라 국제적으로 미즈(Ms)라는 신조어로 통일된 지 오래랍니다.

미국 흑인이란 말도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 즉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고쳐야 한다. 굳이 신체의 한 특징에 불과한 피부 색깔만 따져 차별적 언어인 흑인으로 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인간’적인 사람들의 의견이다.

지난 수십년간 언어와 일반인의 인식·행동 속에 담긴 장애인·여성·소수민족 등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편견을 페미니즘·반인종차별주의·반패권주의 등 새로운 사고에 입각해서 수정하는 진보적 흐름이 거셌다. 보수파들은 이를 두고 ‘정치적으로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를 줄여서 PC)이라고 부르며 야유했다. 여기서 정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권력의 획득·유지·행사를 말하는 넓은 의미의 정치를 말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성·인종·문화·민족·지역·연령·용모·능력·체격·지성·경제수준·성취향 등 다양한 잣대로 나뉘는 인간집단간의 관계 속에는 다수의 소수에 대한 편견과 권력층의 피지배자에 대한 멸시가 일부 담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두고 보수파들은 비아냥 거린다.

“돈 없는 사람 보고 가난뱅이라고 부르면 경제적 능력에 따른 차별이라고? 이건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다. 좋아. 그렇다면 ‘화폐수집 능력 결핍자’라고 불러 주지. 키작은 사람보고 난쟁이라고 하면 모욕이 된다 이거지. ‘세로로 거부당한 사람’이라고 하면 될 거 아냐.” 이런 식이다.

서구 국가들은 지난 수십년간 차별을 막기 위해 법적 장치들을 만들었고 커리큘럼에도 페미니즘·다문화주의 등 진보적 시각을 수용해왔다. 이로써 소수파나 약자의 권리보호와 다양한 개성의 중시는 민주국가의 기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했다.

더 나아가 환경·동물보호·사회복지 등 넓은 의미의 진보시각을 보편화하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

이런 진보적 흐름은 전후 서구의 문학·비평·영화등에서 도도한 문화현상 또는 문화운동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같은 자유주의적인 사회변화가 못마땅한 기득권자들은 이를 PC라 부르며 경멸한다. 이들은 “퍼슨(person)이나 휴먼(human)이라는 단어에 아들(son)이나 남자(man)라는 남성중심적 어미가 달렸으니 다른 말로 바꾸라”고 놀린다. 또 “환경과 동물보호를 위한다면 ‘학살당한’ 나무의 잔해인 종이도 쓰지 말고 동물 시체인 육류도 먹지 말라”고 빈정댄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은 PC적 표현을 비아냥이 아닌 진실로 받아 들인다. 그래서 PC는 세상변화를 갈망하는 진보파와 이를 비웃는 보수파 모두를 매료시키는 ‘톡쏘기 정치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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