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에 1억5000만원 … 일본 와규의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횡성한우 등 유명 한우와 일본 와규(和牛)의 명품 쇠고기 비교 시식회가 최근 경기도 화성 한국농업대학에서 열렸다. 일본은 광우병 발생 국가라 국내에서는 2001년 이후 수입·판매가 금지됐다. 그래서 연구용으로 어렵사리 요네자와 쇠고기 5㎏을 들여왔다. 요네자와는 고베·마쓰사카와 함께 일본의 와규 3대 브랜드 중 하나다.


와규는 한 마리당 1000만 엔(약 1억5400만원)이 넘는 것도 많아 ‘육지의 캐비아’라는 별칭이 있다. 요네자와도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200g)로 먹으려면 약 23만원(1만5000엔)을 줘야 한다. 값이 워낙 비싸 보통 쇠고기 가격 표시는 100g 단위지만 일부 와규 전문 식당에서는 g단위로 팔 정도다.

“와규가 육질은 확실히 부드럽군요.” “깊은 맛은 한우가 나은 것 같네요.”

명품 쇠고기 개발을 목적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 참가한 한국과 일본의 쇠고기 전문가들이 선도·색깔·마블링(근육 내 지방)·질긴 정도 등을 종합해 내린 평가다. 이날 한우는 횡성한우를 비롯, 단풍미인·매력·대관령 등 8대 유명 브랜드 맛이 함께 비교됐다.

◆와규 만들기 비법=야마가타현 요네자와 소 사육농가를 대표해 참석한 오누마 도이치는 일본에서 120마리의 와규를 키운다. 그는 “32개월을 전후한 시기에 도축해야 최고의 쇠고기를 얻을 수 있다”며 “너무 이르면 마블링이 완성되지 않고, 너무 늦으면 수분이 빠져 육질이 떨어진다”고 맛의 비결을 전했다.

키울 때도 온갖 정성을 쏟는다. 오누마는 “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공간을 넉넉하게 하고 식욕을 돋우려 맥주를 주기도 한다”며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등 브랜드와 농가마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송아지 단계부터 부모·조부모 소의 혈통과 유전자(DNA)를 관리한다. 와규가 비싸게 팔리는 것은 품질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와규 이야기가 있다. 예컨대 요네자와 소의 역사는 187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일본인들은 육식을 꺼렸다. 그런데 영국인 선교사 찰스 댈러스가 요네자와에 영어교사로 와 이 지역의 쇠고기를 먹어 보고 반했다고 한다. 이 선교사가 외국인들에게 요네자와 쇠고기를 자랑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고베나 마쓰사카 등 다른 와규 브랜드도 나름의 전통과 이야기가 있다.

일본인 방문단과 함께 방한한 야마가타대 농학부 김성각 교수는 “와규 브랜드들은 독창적인 이야기와 전통을 널리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며 “소비자들은 그냥 쇠고기가 아니라 ‘100년 넘게 이어 온 명성’을 사서 먹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 전략도 눈여겨볼 만하다. 와규는 잘 팔린다고 마구 생산해서 값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요네자와 소도 브랜드 추진협의회가 200여 축산농가의 출하량을 조절한다. 이렇다 보니 수년째 비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명품 한우’도 가능성 커=한우도 와규처럼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이날 행사에서 전문가들은 “맛과 관련해서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여 년 전 한국을 찾았을 때도 한우를 맛봤다는 오누마는 “브랜드마다 고유한 풍미가 있으며 와규보다 덜 느끼하고 담백하다”며 “예전보다 품질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솔직히 기대했던 것 이상’이라는 말도 했다.


한국농업대의 김완영 교수는 “와규의 역사가 오래된 것 같지만 과학적으로 품질을 개량하고 브랜드화에 나선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의 체중을 늘리는 개량은 1960년대, 육질 개량은 80년대에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우가 비슷한 개선에 나선 시기와 각각 15년 정도 차이가 난다. 한우도 체계적으로 품질과 브랜드를 관리하면 가치를 훨씬 더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김양식 한국농업대 학장은 “앞으로 요네자와시를 방문하는 등 한·일 양국 농가가 정기적으로 교류해 품질과 브랜드 육성 노하우를 서로 배울 것”이라며 “한우도 와규처럼 곧 주력 수출품으로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