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청담동 명품거리에도 2만원 땡처리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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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명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단지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닌,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가치를 체험하게 하는 단독 건물숍) 30여 곳이 즐비하고, 설윤형·김혜경·오은환 등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가게도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15일까지 세 번에 걸쳐 부자들도 지갑을 닫은 이 거리의 대로변과 골목을 누볐다.

◆한산한 대로변 명품숍=대로변 황금 입지조차 4~5개 빌딩 걸러 한 곳꼴로 ‘임대’ 현수막과 함께 연락처가 붙어 있다. 새로 지은 뒤 몇 달이 지나도록 입점 점포를 찾지 못한 곳과 폐점하고 나간 업체 이후 새 주인을 찾지 못한 경우가 섞여 있다.

명품거리 한복판엔 명품 웨딩드레스 숍인 ‘베라 왕 Coming Soon’이란 대형 현수막이 지난해 10월부터 걸려 있지만 아직 오픈하지 못하고 있다. 청담동에 있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조지오 아르마니, 분더숍(해외 유명 수입 의류 편집매장)의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 제자리 걸음이다. 환율이 올라 제품 값이 15~20% 비싸진 것을 감안하면 매출은 그만큼 떨어진 셈이다. 명품숍 에스카다의 직원은 “지난해와 비교해 손님이 절반 밑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고가 어린이 옷을 팔던 앙드레김 키즈는 지난해 폐점했고, 창고형 어린이 옷 아웃렛에만 사람이 북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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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브랜드는 더 힘들다. 디자이너 브랜드 ‘설윤형’의 직원은 “원래 한 달 매출이 1억원 정도인데 요즘은 50% 수준”이라며 “한 벌도 못 파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디자이너숍 ‘박항치’엔 2만원짜리 땡처리 세일도 등장했다.

디자이너 브랜드 ‘김혜경’의 김혜경 사장은 “100만원짜리를 10만원에 파는 세일을 했는데 지난해 12월 매출이 3000만원을 겨우 넘었고, 올 1월엔 2000만원도 안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는 한 달에 1000만원이 넘는 임대료가 부담스러워 점원 한 명을 내보내고 혼자 영업 중이다. 그는 비싼 임대료 탓에 청담동을 뜨고 싶지만 청담동에 매장이 있다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어 버티고 있다고 했다.

◆골목 안은 더 찬바람=골목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더하다. 지난해 말 문을 닫은 와인바 ‘빈79’에는 아직 가게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다. 같은 건물 1층 한식집 마루터까지 폐업해 아예 건물 한 채가 다 비었다. 와인바 겸 레스토랑 ‘느리게 걷기’ 청담점의 김현철 매니저는 “일주일에 문닫는 와인 바와 레스토랑이 여러 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20개가 문 닫으면 거의 비슷한 숫자가 새로 생기곤 했는데 요즘은 새로 문 여는 곳이 7~8곳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강남공인중개사 김학렬 부장은 “폐업하고 나갈 테니 권리금 없이 새 주인을 찾아 달라는 요청이 한 달에 10여 건 정도 들어온다”며 “월세를 못 내 보증금을 까먹고 있는 병원과 와인숍, 레스토랑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청담동에서 25년을 산 주민 홍현숙씨는 “골목 가게들이 하도 장사가 안 되다 보니 강남구가 추진하는 일방통행 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일 정도”라고 소개했다.

◆청담동 명성 저무나=플래그십 스토어나 편집숍들이 파리를 날리는 반면 같은 지역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 부문은 지난달 매출이 전년에 비해 6% 늘었다. 갤러리아 김덕희 명품팀장은 “같은 명품을 사더라도 불황엔 백화점의 프로모션이나 마일리지 혜택을 이용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고객들이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해외 본사 지원이 강력한 명품숍의 경우엔 원래 이익을 고려해 낸 가게가 아니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버티면서 영업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한 달에 1000만원이 넘는 임대료를 내면서 장사하기가 힘들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유행을 선도한다는 점 때문에 매출에 비해 청담동 임대료와 권리금에 거품이 너무 많았다”며 “불황을 맞아 이런 거품이 어느 정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지영·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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