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영일기]박병재 현대자동차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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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용들의 전쟁' 이라 불리운 여당의 경선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7월 중순 현대자동차가 기술을 제공하는 자동차 조립공장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하여 밤낮이 정반대인 나라인데다 30시간이나 되는 여정이었기에 여간 피곤한게 아니었지만, 곧바로 현지공장인 '현대모터 브라질 (Hyundai Motorr Brazil)' 사장의 안내로 브라질 대통령을 면담하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브라질은 얼마전까지 우리에게는 엄청난 인플레를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의 나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1994년 재무장관 시절 이른바 '래알 (Real Plan) 플랜' 을 만들어 다시 연 2, 500%에 달했던 인플레를 10% 내외로 안정시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를 희생시킨 인물. 그리하여 그 공로를 인정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된 장본인이 바로 현 카르도소대통령이다.

대외직으로 지극히 폐쇄적인었던 군사정권에 반하여 카르도소 대통령은 국방비를 대폭 줄이고, '새롭고 활기넘치는 브라질 창조' 를 기치로 내걸면서 보호무역주의를 철폐하여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는 등 경제적 부흥에 총력을 경주한 끝에 오르기만 하던 물가를 잡고 금리를 인하하는 등 '경제 대통령' 으로서 진가를 발휘한 인물이다.

사전에 들은 카르도소 대통령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도 나는 '대단한 거물 정치인' 임을 느꼈고 따라서 상당한 부담감과 함께,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만나는 첫 순간부터 그게 아니었다.

여독조차 풀리지 않은 긴장된 마음으로 그를 만나러 간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는 그같은 여독과 긴장이 일순간에 풀릴 만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떤 형식이나 인사치레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소탈한 그의 태도에서, 나는 결코 1억6천만 인구의 지도자가 가질 법한 권위의식이나 가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립공장이 들어서는 비이야州 시모에스 필리오市는 상파울로에서 1, 500㎞나 떨어진 비교적 외진 곳. 하지만 그는 "비이야 주에서 현대차를 생산하게 되어 기쁘고 지역 발전에 도움을 주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 면서 세세한 프로젝트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하는 요인은 경제에 관한 그같은 적극적이고 세심한 관심뿐만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편의를 위해 관례를 무시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그의 격식없는 태도는 면담이 끝난 후 자기가 먼저 나서서 "한국의 최대 자동차메이커 기업인과 기념사진 한장 찍읍시다!" 라고 제의할 만큼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으로 이어졌다.

기공식에서는 현지 주민들의 대환영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이 다 모였는지 2천여명이나 되는 하객들이 참석해서 한데 어울려 삼바춤을 추는등, 기공식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삼바춤의 행렬속에서 그냥 브라질 국민의 한사람으로, 축제를 즐기는 멤버 중 한사람으로 아무 격식없이 삼바춤을 추는 카르도소 대통령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긴 비행시간 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카르도소 대통령의 모습은 비단 국가 지도자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직의 리더가 갖춰야 할 모습일 것이다.

춤추는 대통령,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직원들의 의견에 언제나 열려있고 고객들의 애로사항에 먼저 귀기울이는 그런 편안하고 친근한 경영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박병재 현대자동차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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