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내놔도 안 팔린다? “땅·집 맞바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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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백수 청년 카일 맥도널드는 2005년 7월부터 14번의 물물교환 끝에 빨간 클립 한 개로 1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 『빨간 클립 한 개』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개인 블로그는 방문객으로 붐볐다. 그에게 교환은 등가물을 단순히 맞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불리는 수단이었다. 화폐를 매개로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물물교환 시장이 부활하게 마련이다. 러시아에서 요즘 물물교환이 성행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도 최근 ‘교환’이 부쩍 늘고 있다.

교환은 내가 갖고 있는 상가를 남이 갖고 있는 아파트와 바꾸는 것처럼 현금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물건 대 물건’ ‘물건 대 물건+현금’으로 직접 거래하는 행위다. 지금까지 교환은 ‘사기꾼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반인에겐 생소했다. 교환시장이 붐비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현금 매매 시장이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가면서다. 금리가 올라 대출 이자가 늘고 전세가격(임대보증금)이 떨어져 역전세난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부동산을 급히 처분해야 하는 사람들이 교환시장에 몰려들었다. 박상태 상가타운 부장은 “지난해 이맘때는 교환 의뢰 건수가 100건 정도였는데 올해는 200건가량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교환시장은 불황일 때 호황을 구가하는 장터다. 송정식 경진부동산 팀장은 “현매(현금매매)가 급감하면서 교환이 직원들이 성사시킨 거래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교환 전문 업체도 크게 늘었다.

교환의 가장 큰 매력은 호가 차이가 크거나 처분 곤란한 물건도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정남 렉스 대표는 “대출 20억원을 낀 분양가 30억원 상가를 대출 없는 1억원짜리 ‘깨끗한’ 땅과 바꿀 수 있다는 의뢰자가 있고, 실제로 그런 맞교환이 일어나는 게 교환시장”이라고 말했다. 빚을 줄이는 것 등을 지상 목표로 삼는 투자자에게 가격 차이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송 팀장은 “보증금 1억원, 권리금 2억원 등 3억원 나가는 업소와 1억5000만원의 토지를 바꾸는 식의 거래가 빈번히 이뤄진다”며 “권리금이나 토지의 미래가치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인정받는 아파트도
교환 물건의 절반은 땅이다. ‘땅 대 상가’나 ‘땅 대 주택’처럼 땅을 중심으로 교환이 이뤄진다. 땅은 대개 대출이 들어있지 않다. 땅주인은 수익 창출을 원하고, 대출이 낀 상가·주택의 주인은 이자 부담이 없는 땅을 원한다면 교환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각자의 필요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교환물건이 늘었으나 실제 성사되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시세가 드러나서 에누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미분양아파트나 대출이 많은 고가 아파트는 주인의 급한 사정으로 거래가 수월한 편이다. 교환 시장에 나오는 미분양 아파트는 하청업체가 공사비 대신 받은 아파트(대물)가 많다.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미분양 아파트 수십 채를 현금화하는 것보다 택지와 바꿔 연립주택을 짓는 게 이문을 더 남기는 장사일 수 있다. 아파트는 때때로 프리미엄을 인정받는다. 박모씨의 경우 자신이 소유한 서울 관악구 상가의 시세가 1억5000만원은 될 것이라고 우겼다. 그러나 대출과 전세를 끼고 9000만원에 살 수 있는 시세 3억원의 안양 아파트를 보자 마음이 달라졌다. 아파트 값이 떨어지긴 했어도 한때 3억5000만원 넘게 거래돼 매매시장이 살아나면 손해볼 게 없다고 보고 교환에 응했다. 아파트라는 이유로 6000만원 정도 가격을 더 쳐준 셈이다.


현금 마련을 위해 교환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 종로구 상가(보증금 5000만원)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던 김모씨의 경우다. 급전을 마련하려고 가게를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마침 서울 서대문구의 다세대주택(50㎡)을 상가와 바꾸고 싶어하는 윤모씨를 소개받았다. 고깃집은 보증금에 권리금 5000만원을 합쳐 1억원, 다세대는 시세 1억2000만원에서 대출금 2000만원을 뺀 1억원으로 각각 평가돼 맞교환이 성사됐다. 김씨는 다세대를 담보로 3000만원의 추가 대출을 받았다. 교환전문 업체인 점포퀸 엄홍식 컨설턴트는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임차상가를 주택과 교환해 대출을 이끌어낸 케이스”라고 말했다.

교환은 동상이몽에서 시작된다. 겉으로 내 물건이 좋다고 자랑하지만 속으로는 남의 물건이 더 좋다고 봐야 교환이 성사된다는 얘기다. 황모씨는 지난해 11월 전남 목포시에 있는 모텔을 수원의 아파트와 바꿨다. 서울로 이사를 하고 싶었으나 모텔이 팔리지 않아 교환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수원의 아파트를 모텔과 바꾸고 싶어하는 정모씨를 소개받았다. 황씨는 일단 수원아파트를 교환으로 구입한 뒤 이를 처분해 서울의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 반면 정씨는 은퇴한 뒤 매달 임대료 수입이 있는 상가나 모텔을 찾고 있었다. 모텔을 계속 임대하면 월세 450만원 중 대출이자 240만원을 제외하고 200만원 이상을 매달 챙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임대 계약기간이 끝나면 모텔을 직접 운영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이면 시장이 극도로 침체돼 부동산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을 때다. 황씨는 모텔과 바꾼 수원 아파트를 최근 5억2000만원에 매물로 내놨다.

양도세·취득세 덜 내
교환은 전문 중개업체에 자신의 물건 명세와 원하는 교환대상을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중개업체와는 미리 수수료를 정해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교환은 일반 매매에 비해 중개수수료와 세금이 덜 들어간다. 중개수수료는 매도와 매수가 동시에 일어나므로 한 번만 낸다. 김정남 대표는 “교환 물건 중 비싼 쪽을 기준으로 중개수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개사와 합의해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 매매보다 거래 상대방을 찾기가 수월하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중개사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교환은 현금 거래가 아니므로 거래가격을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통상 교환거래자가 양도소득세와 취·등록세 등을 줄일 수 있는 가격으로 신고한다. 중개업체와 거래 당사자가 합의하면 ‘다운 계약서’를 쓸 수 있다. 이에 따라 다운 계약서를 기준으로 중개수수료를 내겠다는 교환 당사자와 중개업체 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승수 알체인지 대표는 “양도소득세를 줄이기 위해 부동산을 교환으로 사고파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환은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가치 평가를 제대로 못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가치평가는 교환시장의 딜레마다. 가치를 정확히 매기기 위해 감정평가·주택공시가격·공시지가·유사 물건 시세를 활용한다. 그러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교환에는 거래당사자의 경제 여건과 ‘입맛(주관)’, 그리고 협상력이 작용한다. ‘부동산은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처럼 가치를 떠나 개인적 선호 때문에 가격 장벽을 뛰어넘는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예컨대 4억원대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이른바 명당의 가치를 알아보고 3억원대 토지와 맞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환시장에서 사기를 당할 위험은 얼마나 될까. 김현웅 신원DNC컨설팅 대표는 “당사자들이 인터넷이나 부동산업소를 통해 시세를 파악할 수 있으므로 속임수를 쓰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출 이자 등의 고통을 덜기 위해 처분을 서두르는 사람을 상대로 중개사와 짜고 반대쪽 물건의 가치를 부풀리는 사례가 간혹 있다. 무허가 중개업소나 무자격 중개사가 끼어드는 경우도 있다. 교환 물건은 대개 알짜보다 계륵이다. 수익률·세금·대출이자 등에 문제가 있어 정이 떨어진 물건일 공산이 크다. 키재기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해보는 것이 손실 위험을 줄이는 길이다.

허귀식 기자·황태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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