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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말에 대입 자율화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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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기 끝무렵에는 영(令)이 잘 서지 않게 마련이다. 대통령이든, 사장이든, 대학총장이든 떠날 사람 말을 누가 제대로 듣겠는가. 아무리 공들인 정책이라도 후임자가 뒤집거나 홀대하면 천덕꾸러기가 된다. ‘대입 완전 자율화’가 그런 신세가 될까 걱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대입 3단계 자율화를 약속했다. 정부가 대입 업무에서 손 떼고, 7~8개인 수능과목을 최대 4개로 축소하며, 대입을 완전 자율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론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대학에 선발권을 돌려주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우자는 것이다.

성적표는 어떨까. 교육과학기술부는 대입 업무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넘겼다. 첫 단추는 꿴 셈이다. 그러나 수능과목은 해당 교사·교수 등이 반발하자 1개만 줄이기로 했다. 실패했다.

대입 완전 자율화는 2012년 이후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 결정하겠다며 물러섰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총대를 멨고(11일), 엄상현 학술연구정책실장이 엄호(13일)를 했다. 그런데 2012년 이후라는 말이 애매하다. 그때 하겠다는 것인지, 2013년 이후로 미루겠다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2012년(2013학년도)이면 정권 말기다. 대입은 정권 임기(2013년 2월)를 두세 달 남겨놓고 시작된다. 좋게 보면 정권 내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고, 반대로 보면 골치 아프니 다음 정권에 넘기겠다는 얘기다. 2012년에는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일 것이다. 지난 번처럼 교육정책 이념 논쟁이 벌어질 게 뻔하다. 후보, 정당, 보수·진보 간 힘겨루기가 치열한데 대입 자율화가 먹히겠는가. 노무현 정부가 정권 말 시행한 ‘등급제 수능’이 좋은 예다. 노 정부는 “점수로 줄 세우는 폐단을 없애겠다”며 등급(1~9등급)만 제공한 수능을 2008학년도에 도입했다. 수명은 1년에 불과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옛 점수제 수능으로 환원됐기 때문이다. ‘끝물’ 정책의 운명은 그런 것이다.

정부가 진정 대입 자율화 의지가 있다면 발을 빼서는 안 된다. 지금 논의하는 게 옳다. 학생·학부모는 물론 초·중·고교와 대학 관계자를 만나 고충과 의견을 들어야 한다. 기자가 ‘대학 경쟁력을 말한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만난 총장들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3불이 없어지면 옛날식 본고사를 치르겠다거나, 돈 받고 합격증을 내주겠다는 이는 없었다. 다양한 입시안으로 잠재력과 창의성 있는 학생을 뽑겠다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사교육을 유발한 책임도 크다고 했다.

대입 자율화 실타래는 안 장관과 이주호 1차관이 풀어야 한다. ‘자율·경쟁’이 키워드인 현 교육정책의 입안자는 이 차관이다. 대입 자율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영어 공교육 강화가 대표적이다. 기자는 그의 저서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2006년·학지사)』를 다섯 번도 더 읽었다. 정부 정책이 판박이로 담겨 있어서다. 그는 책에서 “장관 따라 정권 따라 바뀌는 입시제도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대학이 해마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학생을 뽑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며 3불 폐지를 강조했다.

대통령 교육 브레인으로 ‘왕 차관’ ‘실세 차관’으로 불리는 그는 몸을 낮추고 있다. 청와대 초대 교육과학문화수석 때의 꼬장꼬장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장과의 대화(10일)에선 소통·현장·데이터 중심의 교육개혁을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대입 자율화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속앓이가 있는 것 같다.

장·차관 마음이 따로 놀면 개혁은 요원해진다. 꼭짓점을 찾아야 한다. 옳은 정책을 안착시키는 뚝심과 능력을 보이는 게 수장의 역할이다. 안 장관과 이 차관은 머리를 맞대고 다시 고민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대입 자율화는 물 건너 간다. 두 사람이 정권 말까지 자리를 지킬 수도 없잖은가.

양영유 교육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