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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미국 자동차3사 경영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철저한 경영혁신과 감량경영' . 포드.크라이슬러.GM등 미국의 자동차 3사 (빅3) 는 70년대말 이후 석유파동과 방만한 경영으로 벼랑 끝에 몰리자 이렇게 위기를 극복했다.

회장 연봉을 36만달러에서 1달러로 깎고 (크라이슬러) , 생산성이 낮은 국내외 15개 공장을 폐쇄하는 한편 (포드) , 종업원을 10만명 감축 (GM) 하는등 '과감한 군살빼기' 로 재기에 성공했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는 30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미국 자동차 빅3의 위기 극복 사례' 연구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새로운 생산방식 도입 ▶완성차 - 부품업체간의 협력관계 구축 ▶생산의 현지화및 전략적 제휴 ▶정부 지원의 적절한 활용등도 빅3에서 배울 점으로 꼽았다.

다음은 이들 빅3의 위기 극복 사례.

◇ 크라이슬러 = 79년 유가폭등이 대형차에 중점을 두고 있던 크라이슬러에 타격을 줘 시장 점유율이 곤두박질했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노인.저학력자.저소득층이 타는 차" 란 이미지가 형성됐을 정도였으나 포드 출신의 아이아코카를 회장으로 영입해 뼈를 깎는 감량경영을 단행,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새 지휘봉을 잡은 아이아코카는 3년간 35명의 부사장중 33명을 해임하고 80년 한햇동안 1만5천5백명의 직원을 정리하는 한편 모든 직원의 급여를 10% 삭감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해고.감봉등을 수용했다.

특히 경영이 극도로 어려웠던 이 시기에 신차개발 계획인 'K프로젝트' 를 추진, 81년 전륜구동형의 K - CAR를 선보였으며 발매 첫해에만 50만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미국 의회가 크라이슬러측이 요구한 15억달러의 정부 보증을 승인했다.

당시 연방정부는 장부가격 60억달러였던 크라이슬러의 전재산을 담보로 잡았기 때문에 돈을 떼일 위험이 없는 거래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당시 "크라이슬러를 영광스럽게 죽게 하라" 는 사설까지 실었으나 새 경영진은 정부.의회.채권단등을 자신있게 설득했다.

이로인해 82년 크라이슬러는 빅3중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 83년엔 24억달러라는 기록적인 이익을 내는등 부활에 성공했다.

◇ 포드 = 80년대 초반의 불황은 포드에도 타격을 줘 포드는 80년부터 3년 연속 적자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포드는 대폭적인 감량경영과 생산설비의 집약화로 위기 탈출을 시도했다.

우선 해외에 진출한 공장중 생산성이 떨어지는 15개를 차례로 폐쇄했고 80년이후 5년동안 전직원의 20%에 달하는 9만명을 정리했다.

이어 각 사업부의 합동팀을 구성, 토러스.세이블등 곡선미를 강조한 스타일의 히트차량 개발에 성공했다.

85년말 선보인 이들 차량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 포드의 시장점 유율은 87년 20%를 넘어서게 됐다.

포드 경영진은 이 과정에서 일본 마쓰다 공장을 직접 방문, 조립방식.품질관리 기법등 일본 업계의 노하우를 습득했으며 소형차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과감히 외부에 위탁생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 GM=방만한 경영으로 90년대 들어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다.

GM 위기 극복의 책임을 맡아 92년 취임한 스미스 회장은 대대적인 인력감축을 단행, 93년중 3만9천명을 줄였으며 95년까지 10만명의 종업원 감축을 추진했다.

빅3중 노사문제가 가장 심각한 업체였던 GM은 대규모 인력감축 과정에서 노조의 동의를 얻어냈다.

또 멕시코를 부품 조달및 조립기지로 활용하고 스페인은 소형차 생산에 특화하는등 생산의 현지화를 확대하고 오펠사등 유럽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해나갔다.

이와 함께 1차 부품업체를 소수정예화하는 한편 공개구매정책도 실시했다.

이에 따라 GM은 93년 이후 매출과 이익이 모두 회복되기 시작했다.

권성철 전문위원.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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