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어업분쟁, 우리측 양보로 일단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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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의 어선나포로 시작된 한.일 어업분쟁이 일단 우리 정부의 양보에 따른 힘겨운 미봉으로 파국을 벗어났다.

일본은 "앞으로 한국어선은 일본의 직선기선 영해에 들어오지 못한다" 는 명분과 함께 한.일 어업협정의 빠른 시일내 개정이란 실리를 챙겼다.

대신 우리 정부는 '선원구타사건 유감표시와 어선나포 재발방지 약속' 을 얻어냈고 "일본의 직선기선 문제는 계속 논의한다" 는 체면 유지용 명분을 확보했다.

그러나 합의사항을 뜯어보면 어업분쟁의 실질적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 어선은 일본의 직선기선 영해를 침범하지 않으며, 설사 침범해도 일본은 단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속없는 어장에 어선이 가지 않을리 없으며, 일본정부가 이를 방관만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 언제라도 어선나포는 재발될 불씨를 안고 있게 됐다.

그나마 먼길을 가기위해 정부는 많은 양보를 해야 했다.

정부가 강력하게 요구한 선원구타에 대한 사과문제는 "어선나포 과정에서 발생한 일은 유감" 이라는 모호한 형태로 처리됐다.

일본이 절대로 사과할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는데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는 또 '양국정부 전문가회의를 통한 직선기선 문제 계속 논의' 자체를 큰 성과라고 주장하지만 외무부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전문가회의를 통해 직선기선이 바로잡힌 예는 없다는데 동의한다.

결국 "이번 한.일외무장관 회담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어업협정 자체를 파기하겠다" 는 일본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치 못한 셈이다.

이는 회담에 참석한 외무부 당국자가 "현해탄의 파국을 막은게 회담성과" 라고 평가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한 외무부 고위당국자는 "어업분쟁이 이 정도나마 해결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 선거등을 앞둔 우리 입장이 점점 불리해진다" 고 설명했다.

대선을 염두에 둔 외무부의 '눈치보기'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결과에 대해 외무부가 어선나포로 야기된 반일분위기에 편승해 별 승산없는 싸움에 쓸데 없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와함께 외무부 내부에서 "미국.일본등과의 마찰은 피하고 보자" 는 보신주의와 일부의 정치편향성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콸라룸푸르 =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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