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 비디오 잡지 만드는 최우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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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90년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영상(映像)은 꿈이자 좌절이다. '꿈'을 따라 방송국으로,영화사로,광고회사로,독립프로덕션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많은 젊은이들 중의 한 사람,최우정(32)씨. 그도 좌절에 부딪혔다.

영 경쟁이 안되는 시간대에 넣고도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타박. 오락프로든 교양프로든 일단 연예인 출연자부터 섭외하라고 또 타박. 왜 그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란 게 '시끌벅적하고 요란스러워야 하는' 한 가지 잣대에만 매달려 있는지.

"어느새 기능공이 돼 있더라구요. " 한달도 채 못다니고 그만둔 컴퓨터회사를 셈에 넣지 않는다면 첫 직장은 공중파방송. 두번째 직장은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독립프로덕션. 교양프로 담당 PD로 그렇게 6년여를 보내고 최씨는 '손발일뿐이지 자기 머리는 없는 사람'이 돼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입에 풀칠하자고 하는 일이라면,아예 비디오 가게"를 해볼까' 하고 시작한 고민이 다다른 곳은 잡지(雜誌). 내용물을 종이 대신 50분짜리 비디오에 담은 국내 최초의 비디오잡지 '플럭서스'의 시작이다.

지난달 중순 서울 홍대앞과 압구정동에서 첫호 2만부가 유통되기 시작한 '플럭서스'는 흔히 '스트리트 페이퍼'로 알려 공짜 잡지들과 닮았다. 카페에서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 그렇고 패션·영화·음악같은 문화중심 소재를 다루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또 하나,만드는 사람들의 '편견'을 자유로이 담아낸다는 것도 닮은 점이다.

그래서 좋다.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편집장 최씨를 포함해 PD·카메라맨·기술감독·그래픽 디자이너 등 만드는 사람 여덟명 모두 20대중반에서 30대초반의 나이니 더 그렇다. 첫호 인터뷰에 전자바이올린을 켜는 음악가 유진박과 영국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를 좋아하는 특정 패션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소개하는 순서도 있다. 잘 만든 카탈로그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혹시 이런저런 광고를 광고 아닌 것처럼 섞어 만든 사실상의 광고잡지는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수록 끝까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풍경' '패션' '영화' '인터뷰' 등을 지나 '아트'순서다.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을 소개하는 양 시작하더니 갑자기 화면에 담긴 그림의 색이 인위적으로 조작이라도 하는 듯 마구 바뀐다. 이건 또 무슨 장난일까.

"그림을 카메라로 찍어서 보여주면,시청자들이 보는 것은 결코 원래의 그림과 같을 수가 없죠." 최씨는 이 차이와 왜곡을 감추는 대신 공공연히 드러내고 이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플럭서스'란 이름은 60년대 초반서구에서 활동하던 전위 예술가 그룹. 그 주요 멤버였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최씨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최씨는 영상을 좋아하되,방송/영화/비디오로 나뉘는 장르에 굳이 얽메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잡지'란 형식은 그래서 좋다. 무료라서 보는 사람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나. 물론 한달에 한번 2만부 찍어내는 비디오테이프 값만도 5천만원. 사이사이 들어가는 광고가 재정을 지탱해 주지 않으면 오래 하기 어렵다.

"전엔 이런 생각을 안했는데 요즘은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그의 꿈을 실현해줄 각종 첨단 장비를 갖추자니 그럴 수밖에. 그는 자신의 비디오 퍼포먼스를 인터넷으로 중계하는 날을 손으로 꼽고 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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