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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칸느의 그린 카펫 칸느 만델유 GC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예전에도 몇 번 프랑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함께 간 일행들과 관광 코스를 짜다 보면 에펠탑, 개선문, 세느강, 샹젤리제에서 찍은 사진들만 매번 업데이트가 되곤 했다. 그래서 자동차로 둘이 단촐하게 떠나온 이번 여행에서는 기필코 프로방스와 코트디쥐르의 남프랑스를 카메라에 담겠다는 작정을 했었고 드디어 칸느에 도착했다.

영화제로 유명한 지중해안의 작은 휴양 도시 칸느. 휴양지로 유명한 프랑스 남쪽 해변은 일찍이 니스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점점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번잡함이 싫어진 부유층들은 인근 칸느 지역으로 옮겨가 고급 호텔, 별장 등을 짓기 시작했고 또 하나의 휴양 도시를 탄생시켰다.

휴가철이 끝난 10월 초순이었지만 날씨는 바닷가 비키니가 어색하지 않았다. 해변을 보아도 니스는 젊고 대중적인 느낌이 드는 반면 칸느는 조용하고 고급스러웠다. 칸느 해변은 호텔의 전용 비치가 많아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비키니 보다는 정박한 요트가 훨씬 많아 럭셔리 휴양지임을 노골적으로 확인시켜 준다는 점. 해안도로를 따라 일급 호텔과 레스토랑들이 도열하고 있었다. 단연 골프장도 칸느 쪽에 많이 위치하고 있었다.

때 마침 세계 최대의 영상프로그램박람회 MIPCOM이 칸느에서 열리고 있어 시내에선 빈 방을 찾을 수 없었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우린 스페인에서 불미스런 사고를 당했고 우리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날라온 SOS 구조팀(?)과 접선하기 위해 이미 2주 전에 지나갔던 칸느로 다시 돌아온 터였다. 자정을 넘어 도착한 칸느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5분 거리의 멘델유라는 마을로 찾아들었다. 하지만 역시 남은 방은 없었다. 먼 길 날아와 시차 적응에 허덕이고 있을 SOS 구조팀의 밤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자력갱생 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시간만 허비한 채 더 늦어진 새벽 2시 30분에 구조팀 숙소의 문을 두드려 단잠을 깨우고 말았으니….

해외 출장이 잦은 사람들이 업무 보다는 골프장을 먼저 찾을 때 늘 면피성 멘트로 날리는 한 마디, “시차 적응엔 골프가 최고다”. 역시나 우리도 시차적응을 위해 다음 날 투숙한 숙소의 부속 골프장으로 향했다.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골프가 우리 여행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환자는 환자다.

삐에르바캉스라는 콘도미니엄 부속 골프장, Cannes Mandelieu Golf Course (Old Course). 노르망디 스타일의 클럽하우스가 멋스러웠다. 클럽하우스 옆의 특이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골프장의 마스코트와 같은 나무라고. 수종이 ‘umbrella pine’, 혹은 ‘parasol pine’이라는데 이름과 딱 떨어지는 모양새였다. 파라솔이나 버섯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이 우산 소나무는 전 코스에도 식재되어 있다고 했다. 백 년도 넘은 이 소나무들은 가지가 뻗어나간 모양으로 보아 시각적으로 페어웨이를 좁게 만드는 해저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 같았다.

역사가 제법 오래된 골프장이었다. 1891년 러시아의 Michael 대공이 고향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골프를 맛보고 돌아온 후 상사병 앓듯 골프를 그리워하게 된 모양이다. 결국 그는 바다와 Siagne 강 사이에 골프 코스를 짓기로 작정하고 칸느 만델유 골프장 터를 다지기 시작했다. 오리지널 18홀 코스를 누가 설계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후에 골프의 거장 Harry Colt가 코스를 리뉴얼하면서 벙커의 난이도가 높아져 싱글 골퍼들도 고개를 저을 정도라 한다.

스코어 카드를 확인하니 전장 5,745m, Par 71 그리 길지 않은 전장 길이였다. 하지만 티샷이 드로우나 페이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코스였다. 특히 다섯 개의 파3 홀은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칸느 만델유는 짧지만 정확한 클럽 선택을 요구하는 아기자기하고 매력적인 코스였다.

특히 지중해의 물을 끌어들인 듯한 큰 운하가 코스 전체를 반으로 양분하는 독특한 형태의 골프장. 그래서 경기 중에 2번 홀과 3번 홀 사이, 12번 홀과 13번 홀 사이에선 카트 채 바지선을 타고 강을 건너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백 살이 넘는 우산 소나무들이 비치 파라솔처럼 몽글몽글 전 홀에 펼쳐져 있고, 규모가 큰 벙커가 곳곳에서 입을 벌이고 있는 칸느 만델유 골프장…. 난 드레스 입고 밟는 칸느의 레드 카펫 보다 골프화 좌충우돌하는 칸느의 그린 카펫이 훨씬 더 좋더라. 포에버 칸느 멘델유 골프장!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