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녀 둔 가정 '통화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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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전 9만원짜리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주부 강모씨 (51) 는 기겁을 했다.

평소 3~4만원대에 비해 두배이상의 액수였기 때문이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지역 전화국에 문의한 결과 강씨는 직원으로부터 상대의 핸드폰 번호 하나를 전해듣게 됐다.

알고보니 대학생 딸아이가 날마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의 핸드폰으로 통화를 해댄 게 요금 급증의 주범이었던 것. "늘상 만나서 수다떨면 됐지 전화로 할 얘기가 또 뭐 있냐?" 고 야단을 쳤더니 딸은 "엄마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며 볼멘 소리를 늘어놓더란다.

집집마다 '전화대란 (大亂)' 이 한창이다.

전화통을 붙들고 사는게 요즘 아이들의 낙이다보니, 각 가정의 전화료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외부에서 통화가 안돼 곤란을 겪는 일이 부지기수다.

특히 부모가 잠든 밤이나 외출시엔 몇시간씩 마냥 전화를 써대기때문에 집을 나서기전 아이들에게 "전화 걸지 말라" 고 단속부터 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한다.

컴퓨터 통신 역시 통화불능 사태를 부추기는 주범. 일단 컴퓨터 통신에 빠져들면 1~2시간은 기본인 아이들과 급한 용건이 있는 어른들 사이에 웃지못할 '전화쟁탈전' 까지 벌어지는 지경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전화 사용이 특히 많아지는 대학생 자녀를 둔 집에선 아예 '한 집안 두 전화번호' 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 전화선을 추가하는데 25만원이 든다니 그 비용도 만만찮은 편. 한국통신은 현재 1백집당 15집은 전화선을 두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있다.

5년 전만해도 전화선이 두개인 집은 1백집당 5집 꼴에 불과했다.

또 고육지책으로 통화중 대기서비스를 신청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서 상당수 전화국이 수용용량한계에 도달, 추가 신청을 받지 못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전화수다의 세계에 빠져드는 자녀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것도 최근의 추세. 예전엔 교우관계가 넓어지고 이성친구도 생기는 대학생은 돼야 문제 (? )가 발생했었지만 요새는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도 '전화병' 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H고교 2학년 김모군. 학교수업과 학원에 쫓기느라 친구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주로 심야통화로 우정을 다진다.

특별히 할 말이 없었더라도 일단 전화만 잡으면 학교에서 일어났던 재미있는 일들, 성적 고민이나 연예인이야기까지 화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공부에 치어 신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전화조차 못하게 하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할 것 같아요. " 김군은 전화를 빡빡한 일상에서 숨통을 트게해주는 '유일한 탈출구' 라고까지 표현한다.

청소년들이 전화로 스트레스를 풀게 되는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지나칠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는게 교육 전문가들의 얘기. 따라서 무조건 윽박지르기보다는 부모가 통화 한계시간을 정해준 뒤 자녀들이 지킬 수 있도록 서서히 지도해 나가라고 조언한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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