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전도연 "내 영화 보며 첨 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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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투리도 외국어나 마찬가지더라구요. 오랜 시간 연습하지 않으면 액센트를 익힐 수가 없어요." 전도연은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내뱉은 해녀 연순을 귀엽고 맛까나게 연기했다. [장문기 기자]

뽀송뽀송한 피부 위로 해맑은 미소가 스며드는 이 여배우가 32세라니, 거짓말 같다. 지난해 11월부터 로케이션 장소였던 제주도 우도에서 해녀의 물질 연기를 위해 땡볕에 온몸을 드러냈을 텐데도 그 흔한 기미조차 없다.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는걸까. 10대 소녀 역에서 30대 커리어우먼까지 폭넓은 연기를 자랑하는 전도연.

정숙한 숙부인 역할을 맡았던 '스캔들' 이후 8개월 만이다. 30일 개봉하는 '인어공주'는 모녀의 이야기이자, 동화 같은 첫사랑 이야기이다. 전도연은 해녀인 엄마 연순과 우체국 직원인 딸 나영의 1인 2역을 해냈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며 생계를 이어가는 '욕쟁이' 엄마(고두심)와 무능한 아빠에게 잔뜩 화가 나 있던 나영은 어느날 엄마의 스무살 시절로 걸어 들어간다.

전라도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한글도 깨치지 못하고 해녀의 물질로 동생 뒷바라지며 살림을 꾸려가는 순진한 연순이가 딸이 팬터지 속에서 만난 엄마의 모습이다. 빚보증 잘못 선 아빠를 허구한날 구박하고 아무 데나 침을 캭캭 뱉는 엄마지만 젊은 시절 한때는 우체부였던 아빠의 자전거 소리만 들려도 안절부절못하던 수줍은 처녀였다.

영화는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슬픔보다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는 기쁨을 택했다. 나영의 팍팍한 현실보다 연순의 바닷가 풍경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전도연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영이처럼 현실에서 가족과의 갈등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을 테고. 연순도 그렇다. 나 자신도 사랑을 해봤으니 누군가를 아릿하게 좋아하는 느낌은 가장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감정이다."그 말대로 전도연은 표독스럽게 엄마에게 대드는 나영과 우체부 진국(박해일)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부끄럼 많은 연순을 매끄럽게 오간다.

그러나 어려움도 많았다. "내가 찍은 영화를 시사회에서 보면서 운 적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고생이 많았지만 "시나리오에서 받은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어 기뻐 울기도 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날씨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한다는 제주에서 햇볕만 났다 하면 물속으로 뛰어들어 수중 장면을 찍었다. 또 영화 대부분을 혼자 끌어가야 했다. "1인 2역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상대 배우도 없는데 마치 대화하는 양 시선을 처리하는 것, 두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받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 모두가 나의 감각에만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 담당하는 분이 '1인 2역 하는 영화가 또 있으면 전도연씨가 현장 감독하세요'라고 할 정도로 자연스러워져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흥식 감독과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이후 두번째 만남이다. 전도연은 처음부터 그만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박 감독의 말을 "감독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물론 전작에서 보여준 세밀한 감정을 건져내는 박 감독의 솜씨를 아는 만큼 마음은 편했다. 그러나 '내 마음의 풍금'에서 연기했던 17세 산골 소녀 홍연의 얼굴이 연순과 겹쳐지면서 결심이 서지 않았다.

"산골과 바닷가라는 배경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홍연이는 아이의 감정이고, 연순은 성숙한 여자의 감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다들 '홍연일 줄 알았는데 연순이더라'고 해줘 기뻤다"고 했다. 사실 이 시대 어떤 톱스타가 산골 소녀, 바닷가 처녀를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관객들이 연순에게서 홍연을 찾아낼까 걱정하는 마음은 아마도 기우로 끝날 것이다.

코미디 영화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인어공주'에서 그는 제법 여러 차례 관객에게 웃을 거리를 던진다. 당시 버스 안내양들이 운전기사에게 출발해도 좋다는 뜻으로 외치던 '오라이'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 연순이가 진국을 선생님 삼아 한글을 배우는 장면 등에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홍수현 기자<shinna@joongang.co.kr>
사진=장문기 기자 <cha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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