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역감정과 盟主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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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선거때가 되면 늘 우려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지각없는 발언이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지역감정이란 어느 시대,어느 곳에서나 흔히 있는 일이었다.따라서 장 보댕이 지적했듯이 지역감정은 그 자체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지역감정은 향토에 대한 애착을 고무함으로써 민족 내부의 다양한 문화를 창출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아픔을 유발하고 민족분열을 일으키는 예는 별로 없었다.최근에는 호남이 영남의 식민지이므로 해방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내부식민지론이 등장할만큼 사태는 심각하다.

湖南소외.기피가 바탕 우리의 지역감정은 결국 호남 소외 또는 기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 역사는 매우 뿌리가 깊다.멀리 신라와 백제의 원한,호남 사람에게는 벼슬을 주지 말라는 왕건의 훈요10조와 풍수지리설,호남이 곡창이었던 관계로 여느 지역보다 수탈이 심했고 그래서 한(恨)도 깊었던 지리적 요인,정여립(鄭汝立)사건과 이로 인해 호남을 역향(逆鄕)으로 보려 했던 불행한 역사,경부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개발하려 했던 일본의 식민지정책과 이로 인한 호남의 상대적 소외등 호남인에게는 응어리가 많았다.그것은 집단'이지메'였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의 지역감정이 박정희(朴正熙)시대의 개발 편중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박정희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호남 기피 심리를 설명할 수 없으며,호남보다 더 소외된 충북이나 강원도에는 왜 지역감정이 나타나지 않는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박정희시대가 지역감정을 가속화했을 수는 있어도 그가 전적으로 책임질 일은 아니다.왜냐하면 그도 지역감정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그리 간단치 않다.우선 도(道)를 없애고 광역 군현(郡縣)제도로 돌아가야 한다.이는 작은 정부라는 세계적 추세로 보아도 합당하다.하동(河東)과 구례(求禮)가 같은 문화권으로서 아무런 벽이 없이 화개장터에 모여 정을 나누며,익산(益山)과 금산(錦山)이 불편없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그러나 그들이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 하동사람은 경상도인이요,금산사람은 충청도인이어서 다리 뻗고 자지만 구례.익산사람은 전라도의 한을 쓰다듬으며 그 밤을 뒤척거린다고들 해 왔다.중국의 성(省)이나 미국의 주(州)는 광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우리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분열과 낭비만을 가져 올 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시대의 정치적 지배계급이 회심(悔心)하는 것이다.지역감정이 청산되지 않는 근본적인 요인은 이를 축복으로 여기며 즐기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지역감정이 없었더라면 그들이 저만큼 기득권을 향유하는 맹주(盟主)가 될 수 있었을까. 국민이 나서서 심판해야 맹주 정치라 함은 중원(中原)을 장악할 희망이 없던 변방의 졸개가 패거리를 지어 지분(持分)을 나눠 먹던 방식이었다.그들은 국민적 통합과 같은 대승적(大乘的) 가치는 안중에도 없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속악(俗惡)한 이기심의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있다.그들이 결심하지 않는한 지역감정이 청산될 희망은 없다.

이제 다시 대통령선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그리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으리라는 희망도 저버린 채 다시 지역감정의 악령이 되살아나고 있다.어차피 저 정치인들에게 희망이 없다면 이제는 국민이 나서 심판해야 할 때다.역사는 이렇게 비아냥거리고 있다.'국민은 각기 자기의 분수에 맞는 지도자를 뽑는다'고.

<신복룡 건국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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