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락녀.술집 작부 TV드라마 타락한 여주인공 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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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그녀들이 타락한 이유가 궁금하다.' 안방 드라마의 꽃,여주인공.드라마

초창기엔 으레 부잣집 외동딸이거나 상경한 시골처녀였다.사회 변화를 반영하듯 근래에는 여주인공이 캐리어우먼 또는 시집 못간(안간) 중산층 가정의 딸로 옮겨갔다.

그런데 지금 TV브라운관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 색다른 광경과 마주치게 된다.간판 드라마들의 여주인공들이 하나같이'타락'한 모습으로 자신을 분칠한 채 버젓이 안방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윤락녀.작부.다방레지.콜걸….

KBS2 주말극'파랑새는 있다'에서 봉미역의 정선경.요즘은 알량한 지식인들을 상대하는 클래식 카페 여종업원으로 조금 신분상승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윤락녀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MBC 수목드라마'내가 사는 이유'의 이영애. 산소같은 배역만 맡았던 그녀는 값싼 립스틱과 촌스런 눈화장을 한 채 70년대 허름한 마포의 술집에서 술을 따르며 젓가락을 두드리는 작부 애숙으로전락했다.수목드라마'모델'후속으로 SBS가 8월에 방영할'장미의 눈물'.미스터리 터치로 그려질 이 드라마에서 신애라는 몸을 파는 고급 콜걸로 나온다.

SBS 일일 9시드라마'미아리 일번지'의 다방레지 미스고 역의 조민수도 이런 범주에 든다.

물론 곰곰히 따져보면 이런 배역이 그동안 드라마속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조연 이하의 지나가는 배역으로 설정되곤 하다가 이젠 버젓이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영화 스크린속에서나 간간이 볼 수 있던 이들이 어떤 경로로 아무런 제재없이'안방 마님'이 됐을까.여협 매스컴 모니터회 권수현 부장의 비판이 매섭다.

“시청자들은 항상 주인공에게 호의적이다.그래서 남자주인공의 폭력이 쉽게 미화되듯 여주인공이 창녀.작부로 나와도 거부감이 희석되면서 화면은 자연스레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시청률을 노린 작가와 연출가들의 윤리의식이 문제다.” 추락한 그녀들에 대한'파랑새는 있다'의 작가 김운경씨의 변론도 들어보자.“윤락녀나 작부.댄서등 하층 인간들이 주인공이 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하지만 창녀나 작부등을 육체적으로 타락한 직업으로만 그녀들을 보지 말아달라.드라마 속에서 그녀들은 영혼이 병든 우리들을 들여다 보는'창(窓)'의 구실을 훌륭히 해낸다.” 그녀들의 타락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큰 흐름인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하루빨리'개과천선'했으면 하는게 점잖은 일반 시청자들의 바람이 아닐까. 장세정 기자

<사진설명>

타락한 여주인공들이 안방을 점령했다.왼쪽부터 작부역의 이영애,창녀역의 정선경,콜걸로 분한 신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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