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시부는감원바람>경영난에 구조 조정 직장인들 실업 신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진로.대농등 부도방지협약대상그룹은 물론 한일.쌍용.기아.한라등 큰 그룹들도 최근 임원 또는 직원에 대한 대규모 감원을 잇따라 단행했거나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다른 그룹들도 인사철이 아닌데도 임원수를 줄이거나 기구개편을 통해 조직을 축소.정비하는등 30대 그룹 가운데 3분의1이 올들어 임직원 총수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계사업정리.회사합병등 구조조정으로 기업들이 포기하는 사업이 잇따르고 있는데다 경영난 극복 수단으로 인력감축을 통한 인건비 절약에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이처럼 감량바람에 떠밀린 퇴직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신규채용마저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여 실업이 또 다시 큰 사회문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8일 중앙일보가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개 그룹이 올들어 임원수를 줄였고,9개 그룹은 직원수를 줄인 것으로 응답했다.그러나 임직원수를 줄인 그룹수는 응답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그룹의 임직원 총규모 감소는 신규채용한 인력보다 회사를 떠난 임직원이 더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룹별 임원감축 규모는 부도방지협약 대상기업인 진로그룹이 전체임원 1백40명중 53%에 달하는 74명을 줄인 것을 비롯해▶신호 47명▶한라 35명▶쌍용 22명 ▶한일 13명등이었다.현대.한진.한화.두산.동국제강등도 임원수가 줄었다. 직원은 한일그룹이 지난해 1만명에서 올해 6천명으로 4천명이 줄었고,▶두산 8백명▶해태 6백11명▶한화 5백78명▶진로 4백명▶동아 3백77명▶효성 3백명▶동국제강 1백40명▶고합그룹 50명이 줄었다.이같은 임직원 감축규모는 95~96년에 비해 그룹수와 규모면에서 매우 커진 것이다.

95~96년 사이 임원 감축그룹은 6곳,직원감축그룹은 4곳이었으며,그룹별 최대 감축인원은 임원 17명(한일),직원 2천명(한일)이었다.

특히 기아그룹은 향후 아시아자동차 1천4백여명을 포함해 4천여명의 대규모 감원을 실시할 방침이고,진로그룹도 세차례에 걸친 인력조정작업으로 전 임직원(7천여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회사를 떠나게 될 것으로 보이는등 대기업의 감원러시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실업률은 농수축산업 종사자 증가등에 힘입어 지난 3월 3.4%에서 5월엔 2.5%로 낮아졌으나 5월 현재 실업자수는 55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4만2천명이 늘어난 상태다.

인사철이 아닌데도 각 그룹에서 감원바람이 잇따르고 있다.그중에는 공개적인 대규모 감원도 있지만 소리없이 이뤄지는 곳도 적지 않다.지난해의 명예퇴직 바람에 이어 재계에 또 다시 불어닥치고 있는 감원바람의 실태와 원인.향후 전망.대책등을 3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8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호케미컬 17층 마케팅팀 사무실.13명이 북적대던 사무실에서 지난달 30일 이후 4명이 면직되거나 계열사로 전보돼 휑하니 비어있다.

금호그룹이 지난 4월1일 미원그룹의 미원유화를 인수해 이름을 바꾼 이 회사에서는 전체직원의 약 10%인 과장급 이하 61명이 면직 또는 전보됐다.또 9명은 스스로 회사를 떠나 모두 70명이 줄어들었다.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및 계열사 임원실에 있던 7개의 부회장실 가운데 4개는 덩그라니 비어있거나 회의실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회장급 7명 가운데 성낙정(成樂正)총괄부회장등 5명이 소리없이 물러났으나 지난달 박두용(朴斗用)한화증권 사장 1명만이 (주)한화 부회장으로 승진했기 때문. 그룹 관계자는“부회장 5명이 공식발표없이 퇴임하면서 내부 충격이 있었다”며“세대교체 차원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말했다.경영난을 겪고 있는 진로.기아그룹등이 대규모'선상투하식'감원을 단행하는 한편에선 적지않은 대기업.중견기업들도 이처럼 소리없이 임직원을 줄이고 있다.감원 바람이 특정그룹에 국한되지않고 재계에 폭넓게 불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다 살려다간 전부 죽는다'는 강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다.임원의 경우 전격적으로 사표를 수리하고 직원들은 명예퇴직.계열사 전보.부서 이동등을 통해 직.간접으로 회사를 떠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영상태가 부실한 기업의 일부 직원들은 한계사업 정리를 통한 인력재배치 과정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그만 두고 있다.금호케미칼은 서울본사.울산공장등 소속 직원 33명을 면직발령하고 미원그룹 계열사인 세원에서 면접을 보도록 했으나 세원측에서“잉여인력 때문에 3개월 수습기간을 거쳐 채용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해 대상자들은 오갈 데가 없는 상태다.이때문에 이들은 노동부에 해고구제신청을 내기위한 준비작업을 벌이고 있다.금호케미칼은 28명의 또다른 직원들을 금호석유화학.아시아항공등 계열사로 전보발령했다.

또 한일그룹이 인수를 추진중인 우성건설에서도 일반관리직 임원 15명 전원이 퇴사했으며 일반직원도 1백40명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우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부도후 법정관리 신청이 기각된 우성산업개발과 우성공영에서도 지난 1월후 각각 1백여명과 7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지난 5월30일 부도가 난 한신공영에서도 6월20일 재산보전결정이 떨어진뒤 보전관리인이 임원 35명 가운데 15명의 사표를 수리했고 50여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대우증권은 지난 5월 정기주총에서 부사장 2명을 포함한 임원 7명이 퇴임했다.

창원에 있는 삼미특수강은 봉강.강관 공장이 포항제철로 넘어가며 직원 2천1백여명 가운데 1천8백명만 재입사 형식으로 받아들여졌고 나머지 3백명은 공중에 뜬 상태이다.아직 부도난 삼미 소속으로 있으나 몸 담던 공장은 포철로 넘어가 할 일도 없고 월급도 못받는 이들은'전원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포철 본사사옥 등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삼성그룹은 올해 한계사업 정리등 구고조정에 따라 약 3천명의 잉여인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이들의 재배치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요즘 중고 사무가구시장에는 기업에서 자리를 줄이면서 팔려고 내놓은 사무용가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울 사당동 으뜸사무집기의 黃득현 부장은“최근 삼미그룹에서 중고가구 물량이 대규모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4-6월사이 중고 사무용가구가 특히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운영하는 고급인력정보센터에는 지난해 7월29일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약1년간 2천9백명이 취업을 의뢰했다.이중 절반이상인 1천6백80명이 기업체 부장급 이상 출신이다.그러나 취업자는 10%에도 못미치는 2백45명에 그쳤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경제2부)

민병관 차장, 박영수 . 이영렬. 홍병기. 이원호. 유권하. 신성식. 이승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