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머리 따로 손발 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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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보건의료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올해 노동계의 하투(夏鬪)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올 들어 타워크레인 노조 등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 파업이 벌어졌지만 산별노조의 파업은 처음이다.

◆왜 파업까지 갔나=이번 파업은 주5일제 실시에 따른 임단협 교섭의 선례가 될 수 있다. 특히 병원처럼 토요일 휴무가 어려운 공공부문의 노조는 보건의료노조의 교섭 결과가 매우 중요하다. 노동계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사측 주장대로 평일 근무시간을 줄이고 토요일 출근할 경우 노동자에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교섭이 꼬인 또 한가지 이유는 병원 노사 간에 이뤄진 첫 산별교섭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타협할 수 있는 사안도 일괄타결에 매달리다 보니 협상이 진척되지 못한 것이다. 병원 노사는 막판까지도 교섭위원의 자격 등 본질과 거리가 먼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갈까=파업에 들어가도 응급실.중환자실.신생아실 등 필수업무는 유지하기로 노사가 합의해 아직 큰 불편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필수업무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환자들의 피해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중앙노동위원회가 보류한 직권중재 권한을 발동할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노측도 교섭을 타결하기 위해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노동부 관계자는 "파업이 장기화하면 사측은 물론 노측의 부담도 커진다"며 "사측이 보다 구체적인 교섭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여 교섭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뇌부는 대화하자는데=병원 노사의 심야협상이 결렬돼 파업으로 치닫는 동안 노사정의 수뇌부는 스위스 레만호수의 유람선에서 대화를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차 제네바를 방문 중인 김대환 노동부 장관과 이수영 경총 회장,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유재섭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9일 오후 한시간가량 선상에서 만나 노사화합 분위기를 조성하자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귀국 후 이른 시일 내에 노사정위원회가 정상화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뇌부들의 이 같은 '화합 제스처'와는 달리 현장에선 노사 간의 대립이 수그러들지 않아 노동계 전체의 흐름을 알아채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투의 신호탄=하투 현장의 분위기는 일단 강경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업은 올 여름 노동계 하투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 2일 잔업거부 투쟁을 한 금속노조는 16일과 23일 하루 네시간의 경고파업 뒤 교섭상황에 따라 29일 전면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도 16일 총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발전.가스.철도 등 공공연맹은 오는 28일, '시민의 발'인 궤도노조(도시철도공사와 각 도시 지하철)도 다음달 하반기 파업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정철근.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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