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명품브랜드의 ‘불황에 대처하는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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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달 17일, 이탈리아 밀라노 피아베 거리의 메트로폴에서 열렸던 돌체&가바나의 2009~2010 가을·겨울 남성복 패션쇼에서다. 지난해 검은색 기본 정장 예복을 시리즈로 내놨던 것에 비하면 이번 시즌엔 여러가지 소재와 기법을 섞어 작업에 공을 많이 들인 게 한눈에 보였다. 이틀 뒤 오베르단 광장 근처에서 열렸던 구찌의 패션쇼에도 손이 많이 갔을 법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재킷의 몸판은 양가죽, 소매는 체크무늬 모직, 칼라 부분엔 모피를 덧댔고 소매 끝은 다시 가죽으로 처리됐다. 같은 소재로 아이템 전체를 꾸민 지난 시즌보다 훨씬 화려한 모양새였다. 프라다는 최고급 캐시미어만으로도 모자라 가죽을 꼬아 스웨터를 만들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민소매 티셔츠에 나뭇잎 모양으로 수많은 구멍을 뚫어 장식했다.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거대한 남성용 모피 코트를 내놨다. 코트에 쓰인 최고급 모피의 분량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옷 가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돌체&가바나(左)와 엠포리오 아르마니.


밀라노 패션 위크에 소개되는 옷은 디자이너가 공을 들인 만큼 비싸진다. 명품 브랜드는 100% 장인의 수작업으로 작품을 만든다. 이 때문에 기본 옷에 장식을 추가할수록 수작업도 늘어나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70만~80만원짜리 청바지에 구멍을 하나 뚫으면 100만원, 여기에 페인트 자국이라도 남기면 또 몇십만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이런 탓에 패션 위크 동안 객석에선 “옷을 자꾸만 비싸게 만들고 있다”는 수근거림이 계속됐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 직격탄을 맞은 명품 브랜드가 앞다퉈 더 비싼 옷을 내놓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대만의 유명 스타일리스트 아이반 홍은 “비교적 저가인 기본 아이템 10개를 파는 것보다 섬세한 장식을 추가해 10배 비싼 옷 한 벌을 파는 게 더 낫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한두 푼씩 모아 명품 아이템을 사는 일반 고객에게 별로 기대할 게 없어지자 명품 브랜드들이 최상위 고객을 겨냥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캐주얼 의류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1월 20일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캐주얼 박람회 ‘브레드&버터’에 참가한 리플레이는 티셔츠 소매와 칼라 부분을 손으로 한땀 한땀 뜯어내는 등 공들인 옷을 많이 내놨다. 리바이스도 국내엔 소개하지 않는 ‘블루 라인’의 품목을 늘렸다. 역시 알뜰소비를 하는 고객층을 포기하고, 아예 지갑을 열 수 있는 상위 소비자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밀라노(이탈리아)·바르셀로나(스페인)=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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