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테이지] 낮게 더 낮게 …‘수도자의 혼례’ 종신서원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2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새남터성당에선 각별한 풍경이 펼쳐졌다. 순교자들의 삶을 좇아 예수를 향한 독신의 길을 걷겠다는 ‘종신서원식’이 열렸다. 수도회에 입회, 지원자와 청원자 생활을 거친 젊은이들의 종신서원식은 일종의 결혼식이다. 예수만을 향하는 수도자의 짝없는 혼례식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다. ‘종신서원을 할 건가, 말 건가’ 이 흔들림은 수도회에 들어간 후 가슴에서 내내 타고 있는 촛불인 셈이다. 이날 새남터성당의 종신서원자는 4명이었다. 모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소속이다. 그들의 가슴 속 촛불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2일 서울 이촌동 새남터성당에서 종신서원식이 열렸다. 서원자 4명이 바닥에 엎드려 한없는 낮아짐을 통한 수도자의 길을 서원하고 있다.


오후 2시, 황인국 몬시뇰의 주례로 ‘종신 서원 미사’가 열렸다. 서원자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 위로 성당을 가득 메운 500여 신자의 기도가 흘렀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황 몬시뇰이 물었다. “앞으로 하느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서원자들이 답했다. “되어 있습니다.” 몬시뇰이 다시 물었다. “정결과 순명과 가난의 생활을 사랑하고 실천하기를 원합니까?” 서원자들이 답했다. “원합니다.”

서원자들은 검정 수도복을 머리까지 덮어썼다. 검정은 ‘세속에서의 죽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을 상징한다. 그들은 바닥에 엎드렸다. 땅보다 더 낮게 자신을 낮추는 삶, 거기서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배어났다. 서원식 말미의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수도회의 선배 수사들이 줄지어 서원자들을 한 명씩 꼭 껴안았다. 서원자들의 가족도 그걸 지켜봤다. 대견함과 애틋함의 시선이 수시로 교차했다.

종신서원식이 끝나고 서원자들을 만났다. 이동철(29) 수도자는 “저희가 생각하는 행복이 세속의 행복과 다를 수 있다. 그건 삶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곁에 섰던 류재형(33) 수도자는 “가난한 삶이 힘들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유에 대한 집착과 함께 삶의 고통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