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공공기관’ 지정 … 후유증 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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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뉴스 분석 “정부가 의도한 인물을 이사장에 앉히지 않은 데 대한 보복이다.” 증권선물거래소를 둘러싸고 지난해 상반기 이후 빚어지고 있는 여러 ‘사건’에 대한 증권가의 시각이다. 기획재정부가 거래소를 공공기관(준정부기관)으로 지정한 것만 가리키는 게 아니다.

발단은 거래소의 이사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해 3월 이정환 후보를 이사장에 선임하면서부터. 당시 정부가 점찍었던 금융계 실세라는 후보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 직후부터 정부의 거래소 흔들기가 시작됐다. 지난해 5월 검찰이 거래소의 방만한 경영에 대해 수사를 벌였고, 9월에는 감사원이 바통을 넘겨받아 감사를 진행했다.

결국 감사원은 “증권선물거래소가 사실상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거래소에 대한 감독과 견제장치는 미흡하다”며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재정부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29일 오후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거래소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와 정부의 예산 통제 등 감독이 강화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부가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경영에 관여하는 데 대한 반론이 거세게 나오고 있다. 거래소는 증권사와 선물회사, 증권 유관기관 등이 지분을 갖고 있는 민간 주식회사다. 특히 본사 소재지인 부산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민간기업인 거래소를 정부가 장악하는 데 대해 헌법 소원을 내겠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또 거래소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민간회사의 주주 권한을 정부가 침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선진국의 거래소들이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무한경쟁을 벌이는 판에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거래소가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는 프랑스·벨기에 등 유럽 국가의 거래소와 합병해 대륙간 거래소를 낳았다. 이는 나스닥도 마찬가지다. 이런 거래소 간의 국제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2006년 10월 거래소를 정부산하기관에서 제외했다. 이번에 정부는 이를 뒤집은 것이다.

정부의 인사 개입 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와 거래소의 노사가 가장 비판하는 부분이다. 거래소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잡음이 터져나왔다. 노무현 정부는 부산 출신의 전직 고위 경제 관료를 이사장으로 밀었다가 노조의 반발과 여론에 밀려 포기한 적이 있다.

거래소 이사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을 지낸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감독원을 통해 얼마든지 거래소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데, 정부가 굳이 공공기관 지정이란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인사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정부는 거래소가 상장 기능과 시장감시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으므로 공공기관 지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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