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코리아 코스트' 줄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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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브라질에 외국인 투자붐이 일고 있다.그런데 유독 일본기업들만이 몸을 사린다.'브라질 코스트'때문이다.인프라 부족,정부의 관료주의와 민간경제활동 간섭이 브라질 코스트의 주요 비목(費目)이라고 한다.지난달 아시아 월스트리트지에 실린 기사 한 토막이다.

지구의 반대쪽 한국에는'코리아 코스트'가 기승을 부린다.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제를 둘러싼 또 한차례의 파동 속에서 우리는'코리아 코스트'의 한 전형(典型)을 만난다.사방으로 번져나가는 거친 반대운동과 이유있는 이견들을 추스르고,도무지 미덥지가 않은 국회 쪽의 심의절차를 거쳐 새 제도를 확정짓기까지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얼마나 더 불어날지 모른다.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고 새 노동법을 장만한지 불과 반년만의 일이다.

우리가 하루 빨리 매듭지어야 할 개혁과제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규제개혁만 해도,금융.노동.토지.수도권집중.재벌.공정거래.환경.가격.진입 퇴출규제등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이 과제들에는 거의 예외없이 관련집단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 하나하나를 건드릴 때마다 크고 작은 파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우리는 지금 인화성이 높은 위험물질로 가득 찬 창고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민감한 제도나 정책을 개혁할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체로 세 갈래로 요약된다.개혁작업의 추진체계,절차와 방법,그리고 이해집단의 대응양식이 그것이다.

추진체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작업을 총괄 관리하는가를 정하는 일이다.일단 주체가 정해지면 중간에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노동법파동에서나 이번의 금융개혁작업에서는 별도의 위원회에 작업을 시켜 놓고는 나중에 정부가 이를 가로채는 바람에 파동을 필요 이상으로 키워놓았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부일을 대행하는 민간위원회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오늘날 우리는 정부주변에 즐비한 형형색색의 위원회들이 마치 박람회라도 연 것 같은 진풍경을 보고 있다.정부 고유의 일은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부가 맡아야 한다.한때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전경련에 맡긴 것은 엄밀히 말해 정부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무리 심하게 흔들려도 정부일은 어디까지나 정부 몫이다.공무원은 정책을 만드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정책의 성패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도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바로 이 때문에 민간위원회를 따로 설치해도 종당에는 정부가 간여하게 되고 추진주체의 중복이라는 폐단이 생기는 것이다.

절차와 방법에서는 이해당사자와 전문가집단의 의견을 골고루 균형있게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이 단계에서는 목소리가 크고 힘이 센 집단의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하기 쉽다.바로 이 함정에 빠져 일을 그르친 사례도 한둘이 아니다.

공개적이고 공정한 여론수렴의 과정을 거친 이상 최종 판단은 정책결정자인 정부가 내려야 한다.이 단계를 성공적으로 넘으려면 부처이기주의,정치적 배려,특정집단의 로비라는 지뢰밭을 피해야 한다.공직자의 소신과 윤리의식만이 지뢰탐지기 역할을 할 수 있다.불행히도 이것이 녹슨 징후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우리가 공적(公的)인 의사결정의 바람직한 문화를 정착시켜 가려면 합당한 절차로 얻어진 결론을 존중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정신이 필요 불가결하다.최종결정에 대한 반대행위는 적어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아무리 훌륭한 정책결정도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된다.

지난번 노동법개정과 이번 금융개혁작업이 파동으로 치닫게 된 이유는 이 세 가지 요건 전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과제 수행의 고비용 구조를 허물지 않고는 개혁의 지속적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다.이 비용의 가장 큰 해독성은 반(反)개혁에 힘을 실어준다는 데 있다.이 점을 생각하면 개혁추진의 원가절감은 한층 절박해진다.

이종대 기아경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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