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업무영역 단계적으로 허문다 - 막오르는 금융빅뱅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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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22일 발표한 금융개혁 세부추진방안은 국내 금융계에도 빅뱅(대폭발)시대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다.그동안 금융개혁위원회 활동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으나,역시 정부가 확정한 내용은 금개위안을 대부분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당국 스스로도 금개위안의 89%를 반영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이번 정부안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문제보다 금융계와 일반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특히 대부분이 정부가 결정해 시행령만 개정하면 곧바로 시행되는 것이어서 효과가 더 확실하고 직접적이다.

금융기관간 업무영역 조정과 가격자유화가 빅뱅의 기본골격이다.금융기관을 은행.증권.보험의 3대축으로 나누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이를 위해 이번에 증권사와 종금사,보험사와 은행.투신사간의 차단벽을 주로 없앴다.앞으로 업무영역을 더욱 허물어 궁극적으로는 일반인들이 가까운 금융기관에 가면 웬만한 금융거래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이렇게 되면 기존의 금융계는 상당한 변화의 회오리를 맞을 수밖에 없다.

업무의 벽을 허무는 것과 함께 수수료 및 금리자유화 추진이 몰고 올 파장 또한 주목거리다.증권위탁수수료는 현재 거래금액의 0.6%로 상한선을 두고 있는데 이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이다.이는 일본도 내년에나 자유화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지금처럼 증권사들이 똑같은 수수료를 받다가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가격담합행위로 제재받을 것으로 보인다.증권업계는 기관등 거액투자가에게는 수수료를 싸게 해주고 개인등 소액투자자에게는 비싸게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결국 소액투자자는 선진국처럼 수익증권등 간접투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윤증현(尹增鉉)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86년 영국의 금융빅뱅은 사실 증권수수료 자유화가 핵심이었다”며“당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0개의 대형증권사중 9개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이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정부는 그동안 미뤄 온 4단계 금리자유화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는데 우선 3개월 미만의 단기저축성 예금금리를 자유화하고 당좌.보통등 요구불예금 금리도 98년 이후 자유화하기로 했다.금융계에서는 은행간 경쟁이 붙어 단기수신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상품에 대한 규제도 대폭 없앴다.예컨대 기업연금을 생명보험사에 허용함으로써 그동안의 연금상품을 크게 보완할 것으로 기대된다.기업연금은 기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부담한다는 점에서 개인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기존의 개인연금과 다르다.또 수령액을 쪼개 연금식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퇴직때 한꺼번에 받는 기존의 종퇴보험과 다르며,민간차원의 연금이라는 점에서 수익성이 처지는 국민연금과 차이가 있다.

정부는 이밖에 자질구레한 각종 인.허가사항도 대폭 푸는 대신 금융사고의 소지를 막기 위해 기업들의 차입은 엄격히 통제하기로 했다.그동안 한 기업이 은행 자기자본의 15% 이상 대출받지 못하도록 돼 있던 동일인여신한도제가 동일계열여신한도제로 전환된다.한 그룹이 특정은행 자기자본의 50% 이상 대출받지 못하도록 하고 50%를 넘은 그룹은 3년내 50% 이하로 줄이도록 조치하기로 한 것이다.지난해말 현재 50%를 넘는 그룹은 14개며 이 가운데 7개는 60%를 넘고 있어 앞으로 이들 대기업의 차입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또 금개위가 건의한 주거래은행제도 폐지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주거래은행이 있어야 그나마 기업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정부는 앞으로 금융기관의 인수.합병.퇴출등을 촉진할 수 있도록 관련제도도 대폭 개선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워낙 골치를 앓아 왔던 문제였던 만큼 이번에도 과연 언제,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는 역시 유보하고 있다. 고현곤.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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