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비엔날레>한국, '국가관賞까지 기대했는데'기쁨.실망 미묘한 교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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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개막된 제47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95년 행사에 비해 대체로 조용하게 문을 열었다.선상 퍼레이드 같은 화려한 부대행사도 보이지 않았고 작품의 경향도 테크놀로지 아트처럼 현란한 작품보다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 많아 차분한 인상을 주었다.비엔날레 행사장인 카스텔로 공원 입구의 비엔날레 상징물도 개막 하루전인 14일에야 설치됐다.한국관 역시 큰 흐름에서 볼 때 이러한 차분한 경향을 띠었지만 한국관 참가작가 강익중씨의 특별상 수상으로 분위기가 일거에 고조됐다.〈본지 6월16일자 1,22면 참조〉 강씨의 수상 소식은 산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보어 그륀발트 호텔에서의 심사종료 직후인 14일 오후5시30분쯤 알려지기 시작했다.베니스 비엔날레 사무국에서 한국관 커미셔너 오광수씨와 코디네이터 김선아씨에게“강익중을 15일 오전11시 카스텔로 공원에서 열리는 개막식에 꼭 참석시키라”고 두차례 통보한 것.개막식 당일 수상자를 발표하고 시상하기 때문에 개막식 참석요구는 곧 수상을 뜻한다.이때부터 한국관 관계자들은 한국관에 모여 상의 종류를 확인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상의 종류는 본인에게도 미리 알리지 않고 개막식에서 발표하는 것이 비엔날레 관행.개막식 2시간 전에야 수상자 명단을 복사하고 있는 비엔날레 사무국 직원으로부터 특별상 수상을 비공식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개막에 앞서 11일에서 13일까지 열린,기자와 미술평론가를 위한 프리뷰 기간중 한국관은 좋은 반응을 얻으며 국가관상 후보까지 올랐기 때문에 특별상 소식은 잠시 실망하는 분위기를 낳기도 했다.

개막식은 3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카스텔로 공원의 주요 통로에 마련된 야외 행사장에서 11시부터 1시간30분동안 열렸다.리노 미치케 비엔날레 회장과 마시모 카르차리 베네치아 시장,제르마노 첼란트 비엔날레 총감독의 인사말에 이어 발테르 벨트로니 문화부장관의 개막선언으로 제47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공식 개막됐다.

이날 단상에는 심사위원인 수전 파제 파리시립미술관장과 토머스 크렌츠 뉴욕 구겐하임관장,커크 바네도 뉴욕현대미술관장,클라우스 비센바흐 베를린 쿤스트 베르케 미술관장이 자리를 함께 했으나 심사과정에서 진행에 불만을 품고 도중에 퇴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미술사가 마우리치오 칼베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빈 의자만 눈에 띄었다.

이날 인사말과 공식 개막선언은 물론 수상자 발표까지 이탈리아어로만 진행돼 외국 관계자들은 큰 불만을 표시했다.특히 수상자 명단을 챙겨야 하는 기자들은 상이 발표될 때마다 옆에 앉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수고를 하기도.강씨는 3개의 스폰서상이 발표된 다음 단상에 올라 상패를 받았다.

수상식 마지막에 국가관상으로 프랑스관이 발표되자 이탈리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차지한 기자단석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프랑스관은 파브리스 이베르란 한 작가의 작품으로 꾸며졌는데 너무 산만한 전시 구성으로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던 국가관.프리뷰 시작일인 11일 세계 각국의 주요 미술관계자를 초청해 대대적인 파티를 여는등 로비를 강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다른 국가관들로부터 더욱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특히 심사위원장인 수전 파제 파리시립미술관장이 강력하게 프랑스관을 밀었다는 후문이다.단순히 작품수준이 높다는 사실 이외에 국가의 힘이나 로비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 한국관은 정치력에서 프랑스관에 밀린데다 한국관 건물 자체가 지닌 문제점 때문에 국가관상 수상에 실패했다는 의견이 많다.건물 천장이 낮고 전시장 중간에 푸른색 철골 계단과 기둥이 서있어 관람객들의 시야를 가리는등 전시장 건물로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된 것.이런저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2회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아 더욱 의미가 깊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 큐레이터 후미오 난조가 커미셔너를 맡은 일본관 역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선상 파티를 비롯해 심사에 앞서 두번이나 성대한 파티를 열고 로비를 치밀하게 했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다만 첼란트가 기획한 특별전'과거.현재.미래'와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3국이 함께 꾸민 스칸디나비아관에 참가한 마리코 모리가 특별상을 받아 체면치레를 했다.

이번 비엔날레에 새로 만들어진 공로상을 비롯한 5종류 12개의 본상과 3개의 스폰서상 가운데 국가관상을 제외한 14개의 상중 8개가 첼란트의 기획전에서 나왔다.국가관에 출품해 상을 받은 작가는 한국관의 강익중(특별상)과 영국관의 레이첼 화이트리드(프리미오 2000),벨기에관의 티에리 드 코르디에(특별상),그리스관의 알렉산드로스 시콜리스(일본기업 스폰서상)뿐이다.

비엔날레에 참가한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상인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상 수상자 가운데 한사람인 유고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은 전반적으로 밋밋한 비엔날레 경향 속에서 많은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특별전'과거.현재.미래'에 속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탈리아관 지하의 캄캄한 전시장에서 소뼈를 가득 쌓아놓고 하루에 7~8시간씩 이 뼈를 가슴에 안고 문지르는 퍼포먼스를 했다.'발칸 바로크'라는 이름의 이 퍼포먼스는 발칸반도의 위기를 고발한 것으로 흰색 옷이 소피로 붉게 물들어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수상대에 오른 아브라모비치는“좋은 작가는 곧 나쁜 작가며,좋은 평론가는 곧 거짓말을 잘 하는 평론가”라고 수상연설을 시작하면서 현대미술 속에서의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짧게 설명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5시 심사장소인 보어 그륀발트 호텔에서 열린 수상자 축하파티에서는 강익중이 수상자를 대표해 수상 연설을 했다.'미스터 해피'라는 별명에 걸맞게 엄숙한 분위기를 유머로 부드럽게 만들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카스텔로 공원 내에서의 비엔날레 본 전시 외에 국가관이 없는 23개국이 별도의 전시장에서 전시를 하고 있으며 또 수십개의 특별전이 베네치아 시내 곳곳에서 열려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지난 12일에는 90년 총감독인 보니토 올리바가 기획한'미니말리아'전시 개막행사가 열려 성황을 이뤘다.이 전시는 흔히 미국의 미술로만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을 새로운 시각,즉 유럽적 사고로 접근해 호평을 받았다.베니스 비엔날레는 11월9일까지 계속된다. 베네치아=안혜리 기자

<사진설명>

한국을 떠나 미국에 머무른지 13년.그의 눈길은 무엇을 꿈꾸어왔던가.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강익중씨는 어디서나 손바닥만한 나무조각을 꺼내 작업해 왔다.1천3백여개의 나무조각을 이어 만든 '오페라 부르는 붓다'는 한국관을 찾는 외국관람객들의 인기작품중 하나.수많은 부처 그림들의 집합속에 스피커를 장치,오페라를 들려준다.오른쪽 위는 시상식을 지켜보는 올해 총감독 제르마노 첼란트,아래는 시상식장의 강익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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