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규→문희상→한명숙으로 혼선 빚다 개혁 이끌 '돌파형' 낙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열린우리당의 이해찬 의원을 8일 새 총리 후보로 지명하면서 청와대는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책임감과 소신, 추진력을 갖췄고 당정관계를 긴밀히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2기는 무엇보다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일 잘하는 정부를 이끌어 갈 사령탑으로 의원평가 1위를 차지했고, 김대중 정부 때 여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개혁 마인드의 이 의원을 최종 낙점한 것이다.

이 의원은 1998년 DJ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내며 교육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원정년 단축 등의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복마전이라 불리던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 땐 부패척결의 칼을 휘둘렀다. 정부혁신과 부패척결을 추진할 적임자로 노 대통령이 이 의원을 낙점한 이유다. 이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노 후보의 대선 기획본부장을 맡은 일등공신이다. 이 의원이 야당과의 관계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 데다 평소 깔끔한 사생활 관리로 청문회 통과에 큰 문제점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지명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5선의 50대 정치인임에도 대권주자로 인식되지 않고 있는 점도 총리지명에 부담을 덜었을 것이다.

88년 통일민주당 의원이었던 노 대통령이 국회 노동위에서 평민당의 이해찬.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맹활약했던 게 두 사람의 첫 인연이었다. 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는 지방선거 공천문제 갈등으로 이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자 당시 초선 대변인이던 노무현 의원이 최고위 회의에 들어가 중진들을 설득, 이 의원에게 공천을 주도록 한 일화도 있다.

이 의원의 총리 후보 지명으로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를 장관으로 임명하려던 당초 구상이 재검토될지도 주목된다. 선수(選數)에서는 이 의원이 앞서 있지만 직전 당의장,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의 자리 역전 모양새가 생겨 당사자들이 떨떠름해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가 60대의 부총리, 각료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갈지도 새로운 실험이다. 이해찬 총리 후보로 오는 과정에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총리직을 고사한 이후 문희상 의원이 급부상했었다. 현 정부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춰온 데다 갈등 조정의 정치력도 뛰어나 새 당정관계 정립에 맞지 않느냐는 여권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문 의원과 초.재선 의원과의 껄끄러운 관계, 야당의 반발수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막판에 제기됐다.

뒤이어 당 지도부가 선호한 한명숙 의원이 부상했다. 특히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한다면 현 정부의 정치적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그러나 부패방지와 정부혁신의 난제를 돌파할 추진력과 뚝심을 발휘해야 할 지금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노 대통령은 7일 저녁 이 의원과의 만찬에 이어 당 지도부와의 8일 저녁 회동 후 심중에 담아왔던 '이해찬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