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은행감독원 소멸'에 강력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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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4일 확정된 금융개혁 최종안은 강경식(姜慶植)부총리.이경식(李經植)한은총재.박성용(朴晟容)금융개혁위원장.김인호(金仁浩)경제수석등 4인의 12일밤 모임에 경제수석실 과장이 배석,합의내용을 받아쓴 뒤 이를 토대로 청와대에서 정부안을 정리한 것이다.

밀실결정처럼 철저한 보안이 취해졌기 때문에 정부안의 완전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한은과 증권.보험감독원등 관련기관들은 일단 반대의사만을 밝힌 채 투쟁수위와 일정은 16일 공식발표 이후로 미뤄놓고 있는 상태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최종합의안이 발표될 경우 가장 격렬히 반대할 곳은 역시 은행감독원조직이 사실상 잘려 나가게 된 한은이다.

최종안에 따르면 은감원은 하나의 부로 축소되고 모두 금감위로 옮겨진다.이에따라 6백명의 은감원 직원중 많아야 10~15%정도만 한은직원 신분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금감위로 가거나 명예퇴직해야 할 판이다.

이미 한은 직원 50여명은 14일 오후 15층 강당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이번 금융개혁안에 결사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직원들은“과거 재무부의 입장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한 이번 안은 중앙은행 독립은 커녕 한은의 위상만 축소시킨 개악안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한은 직원들은 12일의 창립47주년 기념연설에서 李총재가 은감원 분리를 추진하는 재경원의 의도를 강도높게 비판한 직후 태도를 돌변해 정부안에 동의한 것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16일 최종발표가 나온 뒤 한은 간부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마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또 한은노조도 17일 권영길(權永吉)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증권.보험감독원 노조 대표와 함께 정부의 금융감독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 18일 조합원 전체가 참석하는 비상집회를 열어 향후 대응방안을 결정할 방침이다.노조를 중심으로 李총재 퇴진운동을 벌일 움직임도 있어 파란이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공식 입장표명을 자제해왔던 증권.보험감독원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대체로 소관업무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물리적인 통폐합에 반대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정보(李廷甫) 보험감독원장은 13일 기자들과 만나“현행대로 감독기관을 그대로 두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며 “3개 감독기관간 업무협조가 필요하다면 최소규모의 금융감독 협의체를 만들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차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14일 감독원 통폐합에 반대한다는 공식성명을 내놓은 증권감독원의 이종남(李鍾南)부원장도“현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물리적 통합을 강행하는 것은 또다른 부작용만 낳을 뿐”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고현곤.박장희.최현철 기자

<사진설명>

한국은행 노조원들이 정부의 금융감독기능 개편방안에 항의하기 위해 14일 오후부터 한은 본관앞 광장에 텐트까지 쳐놓고 장기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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