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고민과해법>中. 프랑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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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프랑스 경제의 당면 고민은'유러(유럽단일통화)'와'고용'이란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좇지 않으면 안되는데 있다.

일단 유러를 택했던 우파연합은 중도 하산하고 말았다.

좌파연합은 유러보다 고용이 우선이라고 주장했고,그래서 새로운 사냥꾼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러나 맡고 보니 첩첩산중이다.

지난 9일 유럽연합(EU)재무장관회의에 처음 참석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재정.경제.산업장관이 안정화협약 승인문제에 대해“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마디 했더니 유럽 외환시장에 난리가 났다.

유러가입에 필요한 재정기준을 못지키는 나라에 대해 벌과금을 물리는 안정화협약을 승인한다는 것은 국내적으로 고용 최우선 정책의 후퇴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리오넬 조스팽 정부의 모호한 태도는 일면 납득이 간다.

그러나 외환시장은'유러출범 연기'로 감을 잡고 마르크화가 치솟고 프랑화가 폭락하는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경제가 잘 굴러간다면 물론 이런 고민이 필요 없다.그러나 각종 지표는 여전히 프랑스경제가 빈혈증세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0.2%.당초 전망치인 0.5%에 크게 못미친다.그나마 환율요인과 미국경기 호황에 힘입어 수출이 최고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는 덕이다.

경제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살아나지 않는데 있다.지난 1분기 기업투자는 전년동기보다 1.4% 줄었다.저금리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근본 이유는 내수부진이다.

그동안 우파정부가 재정기준 충족을 위해 추진해온 긴축정책과 대량 실업사태가 맞물리면서 구매력 감소-내수부진-투자위축-성장둔화-실업증대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실업률은 12.8%로 전후 최고 수준이다.특히 새로 노동시장에 나오는 25세 미만 젊은층의 실업률은 30%에 육박한다.기업들이 신규채용을 않는 탓이다.

조스팽 정부는 공공분야 35만개등 7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 실업자를 흡수하고 임금은 손대지 않으면서 39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줄여 일자리를 확대하는등 직접적인 고용확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경기부양책을 근본대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이를 위해 최저임금과 저임공무원 임금인상등을 통해 저소득층에 연간 가계소득의 1.5%인 1천억프랑을 푸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좌파정부가 검토중인 방안은 모두 재정이나 기업에 부담되는 것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기존 공공재원의 배분조정을 통해 최대한 재정에 주름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지만 누구도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유러문제에 대해 조스팽 정부가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근로자의 11.2%에 달하는 최저임금 대상자에 대한 임금인상으로 기업부담이 늘어날 경우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업의 수익성을 저하시켜 기대했던 경기회복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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