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따뜻한 소리의 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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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얼마전 아침 나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가“워싱턴”이라고 했다.“미국의 워싱턴이요?”내가 되물어보자 그 아름다운 목소리는“그렇다”고 하면서 나에게 인터뷰에 응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그때 하기로 하고 있었던'북녘동포 돕기 시낭송대회'때문이었다.나는 그 인터뷰에 몇가지 대답을 하고-북녘 바닷가에 있다는,내가 모르는 나의 고향과 내가 모르는 낯선,그러나 낯익은 나의'언니'에 대해,그리고 나의 시를 읽어 주었다.시를 다 읽었을 때 나는 물어보았다.“그런데 누가 듣지요?”그러자 그 얼굴 모르는 목소리는 명랑하게 대답했다.“글쎄요,지난 3월부터 우리는 대북방송인 이 자유아시아 방송을 시작했는데,아직 아무 반응이 없어요.아마 누구인가는 듣지 않겠어요?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듣지 못할 거구요….아마 당간부라든가 그런 사람들은 듣겠지요….”그 여자는 머뭇머뭇하며 대답했고,특히 마지막 말의'요….'자에는 묘한 강세를 주었다.전화를 끊고 나는 전화기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거기엔 굳은 벽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목소리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 그런 벽,공기의 소용돌이로 만들어지는 무섭게 단단한 벽을'소리의 벽'이라고 말한다지만,나는 그날 아침 강한 소리의 벽을 체험하고 있었다.하긴 시를 쓴다는 것이 이런 소리의 벽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도 모르지만,나는 시낭송대회를 끝내고 온 저녁,송도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이 바다의 물결이 북녘 동해의 물결과 합치는 광경을 새삼 보았다.

아마 그 물결 앞에 내가 모르는 나의'언니'는 있으리라.내가 보낸 시를 들으며 있으리라.시는 그러면서-그러니까-이렇게 교환되면서,또는 교환을 시도하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시인이란 사람들은'오르려고 하는 천상'과'발딛고 있는 지상'이 서로 사랑하며 끌어안게 하는 무대를 열면서,그래도 조금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책무를 완성하는 것이 아닐까.그러면 오늘의 벽은 우리의 등을 기대게 하는 따뜻한 등받이가 될 것이다. 글=강은교 시인

<사진설명>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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