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형제.사촌 화합의 한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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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막내아들 녀석의 들뜬 목소리는 벌써 대구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 후에 출발할테니 멀리 가지 말고 놀고 있어.”“예”하고 돌아서는 아들의 뒷모습은 영락없는 열살배기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해마다 4월에 우리 집안은 형제및 사촌들이 모이는 계를 한다.시아버지는 삼형제중 둘째인데 큰집이 5남매,둘째인 우리 가족이 5남매,작은집이 4남매로 형제.사촌이 모두 14남매에 달한다.거기에다 며느리.사위.손자.손녀들까지 합치면 50명이 넘는다.올해는 대구에 사는 시누이댁에 모였다.사실 너무 멀어서 벌금을 내고 불참할 생각이었으나 매년 모임을 갖는 이유가 형제.사촌간의 우애와 화합이므로 마음을 바꿔 참여했다.인원이 많은 탓에 출생순서에 따라 이름앞에 1번에서 14번까지 번호를 붙여 부르고 있는데 우리 부부가 여섯번째다.

모임에는 규칙이 있다.첫째,주최측은 부담을 갖지 말고 가정형편대로 모임을 연다.둘째,부부가 다 불참할 경우 10만원,한쪽만 참석할 경우 5만원의 벌금을 낸다.셋째,반드시 음식은 집에서 손수 만든다.요즘처럼 각박하고 바쁜 세상에 멀리 사는 사촌들이나 시누이집을 방문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 가족은 주말이라 차가 많이 밀릴 것을 예상해 승용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대구에 도착하니 벌써 여러 가족이 와있었다.현관에는 신발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저녁식사가 끝난뒤 작은 시아버지의 말씀이 있으셨다.“우리 세대가 죽어 이 세상에 없더라도 너희들은 앞으로 계속 이 모임을 갖고 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라.” 다음날 일요일에는 온 가족들이 야외로 나가 피구.족구.부부게임등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우애를 다졌다.마지막으로 서울사는 셋째형님께서'내년 4월 신사동에서 만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한분도 빠짐없이 서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아쉬운 이별을 했다.비록 몸은 좀 피곤했지만 내년이 또 기다려진다.

최은숙〈서울중랑구면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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