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한반도 마셜플랜의 기대

50년 전 바로 오늘 47년 6월5일,조지 마셜 미국무장관은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2차대전 후 피폐해진 유럽의 재건을 위해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당시 유럽은 승전.패전국을 불문하고 식량.연료.생필품의 절대 부족으로“이런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느니 차라리 전쟁 때 죽은 사람이 오히려 축복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이 상황에서 미국은 마셜 플랜으로 전후 유럽 복구에 나섰다.미국은 4년에 걸쳐 17개국에 1백30억달러,오늘의 가치로 약 1천억달러에 해당하는 원조와 차관을 제공했다.

이 마셜 플랜을 놓고 당시 영국의 윈스턴 처칠 경(卿)은“역사상 가장 숭고한 행동”이라고 찬양했고,최근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대대적인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듯이 유럽국가들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 미국의 도움을 고마워하고 있다.

마셜 플랜은 유럽의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측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절망에 빠져 있던 유럽인들에게 희망을 일깨우고 이 계획을 통해 국가간의 반목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유럽연합으로까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마셜 플랜이 성공하고 오늘날도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인도주의적 이상(理想)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당시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마셜장관이 연설에서 밝혔듯이“특정국가나 이념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굶주림.가난.절망 그리고 혼돈에서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이 쓰고 남아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트루먼 대통령은 미국민을 향해 희생정신을 요구하며 유럽을 도와주기 위해 닭고기와 계란을 덜 먹을 것을 호소했고 낭비를 없애기 위해 초등학생들은'접시 깨끗이 비우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는 불과 몇십마일 북쪽에 당시 유럽보다 더 혹독한 굶주림과 절망에 빠져있는 동족을 놓고 있는데도 왜 이러한 마셜 플랜이 나올 수 없을까.미국인들은 동족도 아닌 타국을 위해 희생을 서슴지 않았는데 우리가 못하는 이유는 우리 탓인가,북쪽 탓인가. 우리는 북한이 4자회담에만 나오면 식량도 도와주고 대대적인 경제협력을 할 의향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거부로 진전이 없다.북한은 이러한 남북협력이 트로이 목마가 되어 한국에 흡수통일당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로 북한이 몇년이나 더 버틸지 미지수다.그러니 목을 더 졸라 아예 질식케 만들자는 주장도 나온다.그러나 북한은 전쟁도발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쥐고 있고,목을 더 조른다면 군인.공산당원보다는 어린이.노인.병약자.임산부등 사회적 약자들만 당하게 되어있다.결국 우리는 도발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주의적인 계산과 기근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인도주의적 고려 사이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지키고 있다.

현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현실주의적인 접근은 대결구도의 지속이다.현실주의적 접근으로는 남북의 문제가 영원히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사실상 남북의 경쟁은 끝났다.누가 봐도 확실하게 승자와 패자는 이미 결정됐다.이럴 때 아량과 여유를 베풀 수 있는 쪽은 당연히 승자다.패자 역시 이를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이런 관계는 마셜 플랜의 정신과 같이 정치색을 배제한 순수한 인도주의와 이상주의가 작동해야 가능하다.

통일비용이 수백조원에서 수천조원에 이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귀한 이상과 희생 없이는 이를 감당해 낼 수 없다.못 사는 북한동포가 짐으로만 여겨지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내는 통일세 몇푼으로는 북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미국이 남을 돕는다는 순수한 감정에서 우유와 계란을 아꼈듯이 우리도 순수한 동포애.인도주의 그리고 통일에 대한 꿈에 불이 붙지 않고는 이 어려운 과업을 해낼 수 없다.우리가 어렵게 얻은 발전경험을 북한주민에게도 넘겨주어 더불어 잘 살자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올바른 리더십이 확립돼야 한다.지금까지와 같이 철학도,일관성도 없이 상황적 대응만으로는 국민이 믿지도 않고 역량을 끌어 낼 수도 없다.새 정부에서는 우리는 즐거이 주고,북한은 흔쾌히 받을 수 있는 우리의 마셜 플랜이 나올 수 있기를 기다린다. 문창극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