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여성 연출가 김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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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죽음의 침상에서 자신의 삶이 고통없는 추억이었음을 알기 전까지는 그 아무도 자신의 행운을 믿지 말라.' 소포클레스가 쓴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대사다.신탁(神託)의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운명의 힘에 지배받는 인간의 불확정성을 상징한다.

국내에서 드문 여성연출가로 늘 전위에 서 있는 김아라(41.사진)씨는 어쩌면 오이디푸스의'운명론'추종자인지 모른다.그는 과작이면서도 늘 실험정신으로 충만한'새 흐름'을 리드했고 그때마다 그의 독특한 차림새만큼 화제를 몰고 왔다.지금도 그는 오이디푸스처럼 늘 운명 위에서 부유(浮遊)하는 존재로 살고 있는 것이다.때문인지 그는 오이디푸스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오는 20~28일 덴마크 이루스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문화예술축제'포레닝엔 프레야 페스티벌'의 개막공연 연출을 맡아 8일 출국하는 그는 그곳에서도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할 참이다.이미 95년 3부작중 첫번째 이야기인'오이디푸스와의 여행'(장정일 작.김아라 연출)을 가지고 이 축제에 나가 호평받았는데,그때 충예술감독 마리아 렉사와 다져놓은 인연으로 이번 개막 연출을 맡게 됐다.

“올해안에 완성할'오이디푸스 3부작'중 두번째 작품이 된다.유럽.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서 온 5명의 여성 아티스트와 3명의 남성연주자들을 만나 작품을 꾸밀 예정이다.” 원작처럼 한편의 여행드라마였던 2년전과 달리 그는 이번'오이디푸스 2부작'은 현대와 원시가 공존하는'리추얼(祭儀)퍼포먼스'로 정의했다.퍼포먼스의 생명이 즉흥성에 있는 만큼“관객들과의 구체적 만남은 8월 극단 무천의 정기공연이 될 것”이라며 내용 공개를 잠시 미뤘다.

올초 서울시립극단의 상임연출을 맡아 난생 처음'월급쟁이'가 된 그는 오는 10월 세번째 작품'안티고네-인간의 법칙'의 공연을 끝으로'오이디푸스 3부작'의 완성을 이룰 계획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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