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반쪽행사 한국형 TGV 출고식 승차감 좋았으나 우울한 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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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속전철(TGV)이 수난이다.

경부고속철도를 달리게 될 한국형 TGV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29일은 당초 계획대로라면 당연히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날이다.하지만 한국은 한국대로,프랑스는 프랑스대로 TGV 때문에 우울한 분위기다.프랑스 라로셸에서 거행된 한국형 TGV'출고식'은 이런 분위기 탓인지 반쪽행사로 그치고 만 느낌이다.

프랑스측이 조성한 축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측 관계자들의 표정은 침통해 보였다.언제 달릴지도 모르는 열차를 들여와 창고에 썩일 수밖에 없는 무신경에 대한 국내 여론의 쏟아지는 질타를 감당키 어려운 탓이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프랑스의 전언론은 TGV 운영사인 프랑스국철(SNCF)관계자들이 건설회사들로부터 각종 뇌물을 받았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날 한국형 TGV는 축하손님들을 태우고 시속 40~50㎞의 속도로 1.5㎞ 시험구간을 왕복했다.좌석은 편하고 널찍했다.승객을 위한 편의시설도 고루 갖춰져 있었다.비록 저속이지만 승차감도 좋았다.“프랑스 TGV보다 훨씬 나은 것같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프랑스 기자도 있었다.

대형 프로젝트사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대형 프로젝트사업엔 5단계가 있다고 곧잘 이야기한다.정열을 갖고 사업에 임하는 1단계와 환상을 좇는 2단계를 지나 3단계가 되면 공황(恐慌)상태에 빠진다고 한다.4단계가 되면 죄없는 사람 벌주기가 횡행하고,마지막 5단계에 이르러 사업이 완성되면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TGV 사업은 현재 3단계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그러나 정작 문제는 우리가 이처럼 대역사(大役事)를 치밀한 계획없이,그것도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워가고 있었다는데 있는 것이다. 라로셸=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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