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코소 일본문화 <9>돈 있지 매력 있지… ‘나쁜 아저씨’랑 살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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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07면

‘조이와루오야지(ちょい悪おやじ)’라는 일본어가 있다. 직역하면 ‘조금 나쁜 아저씨’라는 뜻인데, 비의 ‘난 나쁜 남자야’가 실은 ‘난 매력덩어리’의 의미이듯 이 단어도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중년남자’로 해석된다. 한국어로 굳이 옮기자면 ‘꽃중년’쯤 될까.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은 좀 결핍된 듯 보이지만 스타일 좋고 돈도 많은 아저씨, 여자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다.

‘조이와루오야지’의 경쟁력을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여배우 사와지리 에리카(22·사진)의 결혼 소식이다. 영화 ‘박치기’, 드라마 ‘1리터의 눈물’로 한국에서도 꽤 인기 있는 그녀는 최근 스물두 살이나 연상인 다카시로 쓰요시라는 분과 전격 결혼을 발표했다. 도쿄 국제비디오 비엔날레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명 비디오 아티스트에다 DJ로도 활동하는 이분, 40대임에도 넘치는 ‘예술가 필’을 주체하지 못하는 ‘조금 나쁜 아저씨’임은 물론이다.

일본 연예계에서는 인기 절정의 여배우가 띠동갑을 넘어서는 연상의 남자와 결혼하는 게 하나의 풍토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2007년 말 16세 연상의 뮤지션과 결혼한 마쓰 다카코(‘히어로’)나 24세 연상인 50대 배우와 결혼한 시노하라 료코(‘파견의 품격’)가 대표적 케이스다.

그에 앞서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 아무로 나미에와 우타다 히카루도 스무 살 언저리에 똑같이 15년 연상의 안무가·사진작가와 결혼했다가 둘 다 5년 만에 이혼했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와루오야지’가 결혼했다고 해서 ‘이이오야지(良いおやじ·착한 아저씨)’로 환골탈태하기는 역시 쉽지 않은 모양.

신기한 것은 일본 연예계엔 ‘결혼 발표’만 있을 뿐 ‘결혼식’은 없다는 사실이다. 사와지리 에리카는 ‘여왕님’이라는 캐릭터에 걸맞게 메이지 신궁에서 식을 올린다지만 대다수 일본 연예인은 특별한 결혼식 없이 조용히 혼인신고를 하는 것으로 절차를 끝낸다. 그와 비교한다면 최고급 호텔에서 한류 스타들을 동원해 가며 치르는 한국 연예인들의 결혼식은 일본 아줌마들이 비행기를 타고 와서라도 보고 싶은 대형 이벤트일밖에.


‘오타쿠’라 불리는 일본의 매니어 트렌드를 일본문화 전문가인 이영희 기자가 격주로 ‘코소코소(소곤소곤)’ 짚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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