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 이어지는데 … 서연아, 어딨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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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혼자 어렵게 살아서 (서연이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요.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많이 울었어요. 생활에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주고 싶어요.”

익명을 요구한 50대 여자가 14일 오전 전화를 걸어 왔다. 그녀는 “10만원이라도 통장으로 부칠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이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목이 메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서연이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뭔가 용기를 주고 싶다. 따뜻한 밥이라도 한 그릇 먹이고 싶다”며 “꼭 연결해 달라”고 전화번호를 남겼다.

서연(17·가명)이는 ‘거리의 소녀’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엄마가 집을 나간 뒤 할머니 집으로 갔다. 지난해 말 금융위기를 맞아 외삼촌이 실직하면서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외삼촌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가출했다. 집에서 가지고 나온 돈이 거의 다 떨어져, 1000원짜리 주먹밥을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잘 데가 없어 밤새 신림동 뒷골목을 전전하다 새벽이면 찜질방에서 잠을 청한다.

보도가 나간 뒤 서연이를 돕겠다는 온정이 이어졌다. 같은 또래의 딸이 있다는 40대 주부는 “딸처럼 보살필 테니 우리 집으로 보내 달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할아버지는 “애 상황이 급한 것 같은데 10만원이라도 보낼 테니 계좌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미국의 한 유명 피아니스트도 중앙데일리(중앙일보 발행 영어신문)를 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며 e-메일을 보냈다.

서연이를 급히 찾았다. 휴대전화가 없기 때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연이를 보면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14일부터 수차례 전화했다. 하지만 서연이는 소식이 없었다. 친구도 “찾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15일 금천청소년쉼터에 잠깐 나타났다가 외출한 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서연이를 만난 건 한 달 전이다. 늦은 밤 24시간 패스트푸드점 테이블에 고개를 묻고 새벽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을 불러 주고 “눈이 예쁘다”고 칭찬하면 얼굴이 환해지던 아이였다. 밥을 같이 먹을 때도 “먼저 드세요”라며 수저를 먼저 드는 법이 없었다. 배려 받은 적이 없지만 배려하는 법은 알고 있었다.

우리의 무심한 시선은 비켜 갔지만 서연이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 서울 신림동과 천호동, 동대문의 뒷골목, 늦은 밤 공원과 지하철 역사의 벤치에 수많은 ‘서연이’가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0년 사이에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두 번 버림받았다. 우리가 눈살을 찌푸리고 ‘무서운 아이들’이라며 피했던 그들이다.

서연이에게 정작 필요한 건 쌀이 아니다. 동사무소와 기업 등이 불우아동을 위해 내놓은 쌀은 처치하기 곤란할 정도다. 취재진이 만난 거리의 아이들은 20여 명. 이들을 찾아온 선생님은 없었다. 아이들은 “꼴통에다 시끄러운 제가 없어서 선생님이 좋아하실걸요”라고 말한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최선숙 팀장은 “아이에게 필요한 건 밥을 챙겨 주고 보살펴 줄 따스한 손길”이라고 말했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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