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결혼 중매' 까지…부자손님 모시기 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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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주말인 지난 5일 저녁 서울 워커힐 호텔의 한 야외정원. 한강이 굽어보이는 전망에 인기 TV 연속극 '호텔리어'의 촬영장소였던 이곳에 수십개의 원형 테이블이 놓였다. 오후 5시부터 잘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어 200석 자리를 금세 채웠다.

요즘 흔한 단체 맞선 행사 같지만 결혼정보회사가 아니라 시중은행이 주관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프라이빗 뱅킹(PB), 부자손님 잡기에 열중하고 있는 은행들이 마침내 중매 서비스까지 손대기 시작했다.

◇이색 서비스 백출=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뒤 지난 봄부터 가열된 은행권 내 PB 대전(大戰)이 이색 서비스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하나은행이 주관한 이번 맞선 파티의 참석자 200명은 적어도 수억원 이상의 예금을 한 최우수(VIP) 고객의 자녀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이 모임에서 맺어진 커플의 결혼식 주례를 서겠다고 나섰다.

씨티은행은 미국에서 열리는 전세계 부자고객 자녀 모임에 한국의 VIP 자녀들을 참가시키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웰빙 서비스'처럼 고객을 대상으로 건강.취미 강좌를 여는 것은 이미 보편화됐다. 골프 클리닉이나 와인 시음회, 모발.피부관리 강좌 등이 그것이다. 미술품 감상 및 투자법, 다이아몬드 고르기 등 정보를 제공하는 은행이 많아졌다.

국민은행처럼 외제 고급 리무진 승용차로 고객을 공항이나 집까지 모시는 서비스도 늘고 있다.

지난달 문을 연 스탠더드 차터드은행 서울 역삼동 PB 전용센터에는 '서비스 앰배서더'라는 직책이 있다. 고객이 객장 문을 들어설 때부터 나갈 때까지 안내와 금융상담은 물론 실내 조명, 음악 선정 등 고객의 심기를 살피는 일까지 한다.

유언장 보관.집행, 해외 유명 병원 건강진단 투어 등도 흔해졌다.

◇왜 PB인가=하나은행의 한 임원은 "보통 고객 100명보다 한 사람의 부자 고객이 은행 영업에 보탬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래 변호사.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을 겨냥한 마케팅이 가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말 현재 의사에 대한 신용대출을 지난해 말보다 50%, 변호사 대출은 30% 늘렸다.

수신 10억원 이상의 고객을 상대하는 PB센터는 2002년만 해도 국내 시중은행에 7개밖에 없었는데 40여개로 늘었다.

홍승일.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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