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김영삼 대통령의 실패와 有終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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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고로 혁명은 혁명가의 소원대로 귀결되지 않는다는게 역사의 교훈이다.과감한 개혁 역시 대체로 성공한 예가 드물다.그 까닭은 혁명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그러나 가장 큰 요인은 주체세력의 지나친 이상주의에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혁명이나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은 다분히 교조적(敎條的)이기 쉽다.그것은 혁명기의 흥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구체제는 시술(施術)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칼을 빼든 주체의 입장에선 철저히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젖어들기 때문이다.그래서 혁명의 진행과정은 애초에 밑그림이 있건 없건 온갖 종류의 즐거운 앙갚음으로 점철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혁명은 많은 과오를 범해 급기야 반동에 부닥치게 된다.역사상 숱한 개혁과 혁명이 실패로 끝나는 도식(圖式)은 그렇게 비슷하다.

한편 옛소련의 개혁.개방을 주도했던 고르바초프는 여느 혁명가와 달리 매우 지성적이고 조심성 많은 인물이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혁정책은 70년이나 묵은 구체제 습성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었다.그때문에 그의 이상론은 전세계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경제사정의 악화라는 복병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실패는 그런 전례에 비춰 볼 때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무엇보다 그에겐 이상은 있었으되 밑그림이 없었다.개혁초기에

실행계획 부재(不在)를 지적하는 각계의 조언을 그는 기득권자들의

훼방쯤으로 치부했다.그리고 그가 몰두한 것은 자신의 과단성과 힘을

과시하기 위한 특별 조치였다.말하자면 즐거운 앙갚음 같은 것이었다.물론

그가 표방한 문민시대와 신한국 건설이 시대적인 당위성을 충분히

확보했다고는 하나 그는 적어도 실천면에서 교조적이었다.그가 단호한

나머지 융통성 없는 어휘들을 즐겨 구사한 것만 보아도 그의 정신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아무튼 그 결과로 그의 개혁은 구체제를 허무는

개혁이었지,신한국을 세우는 개혁은 되지 못했다.오늘날의 총체적 난국과

리더십 위기는 그런 허물기 개혁의 뒤끝이다.金대통령의 문민정부는 단

4년여에 개혁실패를 자업자득으로 끌어안게 됐다.

문제는 대통령의 실패가 국가적인 실패로 직결된다는 점이다.작금의

경제위기.정신적 공황상태.정치위기.안보위기가 어느 분야에서,언제 국가

존망의 환난을 야기할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바로

국가적인 실패의 개연성을 우려케 한다.

때문에 여러 말 할 것 없이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그가 말했듯이

유종(有終)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행여 자신의 실패나 레임덕이 싫어

이를 미봉하려 해서는 안된다.지금 대통령은 그가 굳이 원한다면 아직도 칼을

휘두를 수는 있다.

그러나 옛말에'기운이 세다고 소가 왕노릇하느냐'는 경구가 있다.남은 힘이

있다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그것이

유종이다.

본래 지도력이란 배의 조타수가 파도를 헤치고 항로를 열어가는 능력과

같다.또 위대함이란 자신의 욕망을 지배하고 나 대신 많은 사람의 자유와

행복에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金대통령은 스스로 위대한 지도자가 되고자

했던 분이기에 무엇이 유종인지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남은 기간에 뼈를

깎는 각오로 작금의 난국을 안돈케 하고 지리멸렬한 민심을 추슬러야

한다.金대통령의 실패가 다행히 조금은 보완의 시간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대통령의 실패가 민주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한보사태와 현철(賢哲)비리사건을 계기로 첫째 특권.특혜라는 작태가

더이상 발붙이기 어렵게 됐고 돈과 권력의 유착에 준엄한 견책이 내려진

점,둘째 권력의 자의(恣意)보다 민중의 상식이 더 무섭고 민심이 결국은

천심이라는 점,셋째 돈 적게 쓰는 선거혁명에 대한 공감대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애써야 할 유종의 길이 있다.차제에

부패방지를 법제화하고 선거공영제를 정착시키는 일이다.그래서 돈과

권력을 영원히 갈라 놓도록 해야 한다.바로 이번

대통령선거때부터.金대통령이 진정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국민은 손에

들었던 돌을 놓고 박수로 그를 보내줄 것이다.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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