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프라를세우자>29. 대중음악 공연장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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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왜 대중음악을 체조나 역도경기장에서 들어야 합니까.” 외국 팝스타의 내한공연이나 국내 가수들의 대형 합동공연 장소는 거의 예외없이 서울 올림픽공원의 체조나 역도경기장이다.클래식하면 세종문화회관.예술의전당,연극하면 국립극장등 장르를 상징하는 대형 공연장이 떠오르지만 대중음악은 차갑고 거대한 느낌의 체육관에서 셋방살이 하듯 공연을 치른다.

국내에서 대중음악 전용공연장은 한마디로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세종문화회관.문예회관등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형 공연장은 원칙적으로 모든 문화장르가 대관해 쓸 수 있다.그러나 실제로 대중음악인이 이들 대형 공연장을 대관해 공연하는 일은 거의 전무하다.예술의전당은 자체기획을 제외한 외부 대중가요 공연기획자의 대관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89년 패티김 공연을 통해 대중가요에도 무대를 개방한 세종문화회관은 클래식.연극.무용등 순수예술이 무대를 쓰고 남은 기간에만 대중가요에 대관기회를 준다.그러나 기간이 워낙 짧은데다 장마철.평일등 비수기에 몰려 있어 조용필.신승훈등 대형스타 중심으로 1년에 2~3명 공연할 수 있을 뿐이다.문예진흥원이 운영하는 전국의 문예회관도 연극.클래식등에 절대적 우선권을 주고있는 점은 마찬가지. 공연관계자들은“문예진흥기금을 꼬박꼬박 내는 대중음악 부문에 공연기회를 전혀 주지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반발하고 있으나 공연장측은 대중가요가 상업성과 자생력이 높다는 이유로 기회차별을 당연시하고 있다.

때문에 가요공연 기획자들은 대중음악 전용공연장을 찾게 되지만 사시사철 대중가요만 공연하는 순수한 전용공연장은 전국을 통틀어 서울시내 세군데 뿐이다.

94년 세워져 최근 1천회 공연을 돌파한 대학로의 라이브극장과 지난해 설립된 신촌 라이브극장'벗'및 강남 파워아트홀등은 연간 공연일수가 3백일에 접근,그런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2백~4백석 규모의 소공연장에 불과해 1천~5천명을 수용하는 중규모 공연은 불가능한 형편이다.해외 팝스타 내한공연처럼 5천명 이상 청중이 예상되는 무대는 잠실 체육관단지나 올림픽공원 같은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잠실의 대관조건은 정상적 방식으론 흑자를 내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수백만원의 대관료와 전기.수도료등 시설 사용료를 기본으로 낸 뒤 입장수익의 6%를 문예진흥기금으로,10%를 부가세로 납부하고 다시 25%를'할부대관료'로 통칭되는 시설사용기금으로 내야 한다.

입장수익의 41%가 공연전 이미 날아가는 셈.할부대관료는 정식대관료를 따로 받는 만큼 존재 명분이 모호한데다 초대권등 무가표까지 기산해 징수하는 불합리를 안고 있다.선납조건인 점도 커다란 부담.때문에 공연업체들은 잠실대신 올림픽공원으로만 몰리고있다.수만명의 청중이 몰린 마이클 잭슨 공연을 잠실 메인 스타디움에 유치했던 태원예능측은 할부대관료가 무려 15억원에 달하자 불합리하다며 납부를 거부하고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건 상태다.

문화체육부는 할부대관료의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지난해 서울시에 잠실체육단지의 할부대관료를 10%이하로 인하해줄 것을 정식 요구했지만 서울시측은 여태 묵묵부답이다.

서울시측은 운동경기의 할부대관료가 입장수익의 20%인 만큼 형평을 고려해 대중음악공연에 25%를 부과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할부대관료가 8%인 올림픽공원과 비교해보면 설득력을 잃는다.

올림픽공원은 할부대관료가 잠실의 3분의1 수준이지만 운동경기와 달리 조명.음향등 무대세팅에 수천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체육관 공연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 역시 적지않은 부담이라고 공연업체들은 입을 모은다.결국 적자 아니면 본전치기로 하나마나한 공연에 업자들은 기업등 스폰서에 의존해 수입을 버는 방식이 보편화돼 있다.

한 공연업체 관계자는“심한 경우 공연장측 직원과 결탁,청중수를 조작해 가외 수입을 올릴 소지도 있다”고 경고한다.

대중가요 전용소극장이 전무한 것은 물론 체육관이 잠실에 필적하는 요율의 할부대관료를 받고 있는 지방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정식 공연장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한강 고수부지나 광장.공원등을 공연장으로 이용하자는 발상도 나오고 있으나 대형집회를 꺼리는 국내 문화환경과 관 정서상 허가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 이뤄지는 경우가 워낙 드물다.

변변한 공연장을 찾을 수 없는 이같은 상황은 국내 콘서트문화를 극도로 위축시키고 무대 대신 방송을 신곡전파.공연의 유일한 수단으로 대체시켜 가창력 보다 얼굴이나 댄스로 한몫보는 비디오형 10대 가수들만 판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문화체육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인정,지난해말 2백억원 규모의 예산을 들여 각 시.도에 가요를 중심으로 한 대중예술 전용공연장을 1개소 이상 세우기로 계획을 세우고 재경원에 신청했으나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 주도로 대중음악 전용공연장을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전문적인 운영능력을 갖춘 관리자 없이는 또하나의 적자기관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상당수 공연관계자들은“체육관등 기존자원을 원목적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개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체육관의 할부대관료를 없애고 대신 정식대관료를 합리적 수준으로 올리든지,아니면 할부대관료를 올림픽공원 수준으로 낮춘다면 대중음악공연이 크게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라이브극장 이종현대표는“대중음악은 많은 돈을 들여 공연장을 짓기보다는 일상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연이 이뤄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더욱 중요하다”며“무엇보다 실력은 있지만 돈이 없어 공연장 대관을 못하는 음악인들이 부담없이 청중과 만날 수 있는 클럽(라이브 카페)이 많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찬호 기자

<사진설명>

서구와 달리 라이브카페 상당수가 국내에서는 불법으로 취급돼 대중음악의 근원인 언더그라운드 공연문화를 위축시키고 있다.사진은 대학가의 한 카페에서 공연중인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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