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간소녀들>上. 추자도 티켓다방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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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0대 소녀들이 섬으로 팔려간다.1천만원이 넘는 빚 아닌 빚에 묶여 추자도.흑산도등 섬마을 티켓다방에 갇혀있다.업주들은 이들에게 하루 15시간이 넘도록 일을 시키지만 모두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뒤늦게 잘못을 깨달아도 소녀들은 번뜩이는 감시의 눈초리 속에 탈출은 꿈도 못꾸며 절망과 자포자기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청소년의달을 맞아 본지 특별취재팀이 섬 지역 티켓다방과 직업소개소 실태및 문제점등을 파헤쳤다. 편집자

“살려주세요! 팔려온지 한달이 넘었는데 섬은 감옥이에요.지난주에는 같이 일하던 강양이 도망가다 세시간만에 배안 화장실에서 붙잡혀 개처럼 맞으며 도로 끌려왔어요.” 17일 밤 북제주군 추자도 선착장 번화가.다방 7개가 나란히 늘어서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제주도 북쪽 48㎞ 지점에 덩그러니 떨어진 추자도는 하루 한번 들고 나는 배편 이외에는 완전히 고립된 곳이다.

여관에서 한 다방에 전화를 걸었다.다방 업주는'티켓비가 한시간에 2만원'이라며 아가씨 4명중'잘 나간다'는 2명을 보내줬다.

손님이 시간 단위로 된 티켓을 끊은뒤 아가씨와 함께 즐기고 때에 따라서는 추가 요금을 받고 윤락행위를 하기도 한다는 소위 티켓다방이다.

여관에 들어선 崔혜림(18.가명)양은“다방에 50여명의 아가씨가 있지만 조기잡이 배가 들어올때 티켓을 끊으려면 이틀전에 예약을 해야 해요.기관장 이하는 티켓을 못끊을 정도로 인기지만 우리는 개털이에요”라며 티켓다방의 실정을 설명했다.

티켓비는 모두 다방업주의 수입이다.재수없게 티켓비도 안주고 떼어먹는 손님을 만나는 날은 아가씨들이 고스란히 보상해야 한다.

“몸이 아파 하루 쉬면 영업비.티켓비를 합쳐 월급에서 36만원을 까버려요.전날 티켓 때문에 늦게까지 일하다 오전7시 출근시간을 세시간 지각했더니 9만원 벌금을 맞았어요.몸이 아파도 한시간에 2만원씩 내돈으로 티켓을 끊어야 쉴 수 있지요.” 서울사당동이 집인 崔양이 가출한 것은 95년초.친구 소개로 처음 강남과 신촌의 단란주점에서 접대부로 일을 했지만 민자(미성년자의 약칭)라는 딱지 때문에 단속 경찰이 무서워 6개월만에 그만뒀다.

“하루는 주점 언니가'민자 걱정없이 돈 많이 벌 수 있다'며 매니저(직업소개소 상담원)를 소개시켜 주데요.매니저는 어머니 이름을 묻더니 도장을 파고 가짜 취업동의서를 만들더군요.” 崔양은 다음날 전남목포시의 한 봉(티켓)다방에 보내졌다.직업소개소를 통해 다방에 팔려오면서 소개비 70만원을 덮어쓴데다 약간의 용돈을 받아 2백만원의 빚을 졌다.

한달 월급이 1백50만원이라 쉽게 갚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빚은 두달만에 오히려 두배로 늘어났다.

“빚보증을 선 같은 다방 金양이 잠수를 타는 바람에(도망갔다는 뜻)金양 빚 6백만원까지 떠안아 졸지에 빚이 1천만원으로 늘어났지요.다른 다방아가씨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빚이 1천만원이 넘으면서 도망갈 수 없는 섬으로 팔려왔을 거예요.” 崔양은 이후 석달에 한번꼴로 티켓다방을 떠돌다 빚이 1천6백만원이 넘자 지난달 추자도로 팔려왔다.추자도에서도 석달만 일하고 완도로 가야 한다고 했다.

“집에는 목포 레스토랑에서 카운터 본다고 전화했지요.빚이 2천만원이 넘어가면 사창가로 팔려간다는데….이제 희망은 사라진지 오래구요.육지에나 나갔으면….”崔양은 차용증에 덧붙여준'도망가면 끝까지 쫓아간다'는 협박과'사기죄로 콩밥을 먹는다'는 각서가 겁나 탈출은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추자도〓김태진.최재희 기자

<사진설명>

제주도 북쪽 추자도의 한 다방에서 10대 소녀가 커피.물.찻잔등을 들고 차배달을 가고있다.추자도에만 이런 소녀들이 50여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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