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라크'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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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원제 The Iraqi Borrowed Kettle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대진 외 옮김
도서출판 b, 237쪽, 1만5000원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원제 The Fragile Absolute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재영 옮김
인간사랑, 240쪽, 1만5000원

신세대 지식인 독자가 좋아하는 철학자는 누구일까. 아마도 슬라보예 지젝(58)일 것이다. 1995년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라는 당시로서는 다소 평범하지 않은 제목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지젝은 지난 몇년간 국내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읽히는 철학자다.

지난해에도 『메트릭스로 철학하기』(한문화)를 통해 영화 ‘매트릭스’를 텍스트로 현대인의 삶을 철학적으로 분석해 독자를 즐겁게 했다. 최근에도 『진짜 눈물의 공포』(울력)과 『이라크』(도서출판 비),『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인간사랑)이 번역돼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지젝이 이처럼 국내의 신세대 지식인들을 매니어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뭘까. 현란한 용어와 절제되지 않는 현학은 오히려 그의 철학에 대한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약점’을 그는 신세대 지식인들의 문화적 감수성에 호소력을 지니는 쉬운 소재와 글쓰기의 자유분방함으로 커버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그는 지금 동유럽의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던 행동파 철학자다.

지젝의 철학적 기반은 다양하다. 바탕에는 칸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독일 관념론이 깔려 있다. 특히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정신분석학을 현실분석의 방법으로 확장한 프랑스 철학자 라캉은 문화적·이데올로기적 분석의 중요한 수단을 제공한다. 그런 한편으로 카를 마르크스에서 레닌에 이르는 좌파 철학자들을 섭렵했다.

철학을 무기로 지젝이 다가가고 있는 곳은 무의식이 지배하는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공간이다. 그는 거의 모든 저작에서 유독 히치콕과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최근에는 워쇼비치 형제의 ‘매트릭스’를 텍스트로 삼는다. 그 속에 무의식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 관용과 정치적 정의에 대한 옹호, 탈근대 시대의 주체성 등이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주제다.

그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미국 컬럼비아·프린스턴 등 유수 대학에서 강의하면서부터다. 그가 90년대 후반 미국에서 미국의 커피와 변비약 등의 광고와 영화에서 미국인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까발리기’시작하면서 세계 철학계에 알려졌고 그와 함께 한 학자들은 ‘슬로베이나 라캉학파’로 명명되기 시작했다.

지젝이 지식인 독자를 유혹하는 가장 큰 장기는 바로 자유분방한 ‘뒤집기’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3권의 책도 이 같은 뒤집기에 성공하고 있다.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절대자와 현실, 강자 등의 허구를 뒤집고 약하고 상대적이고 가상적인 것의 우위를 논증한다. 그는 ‘실제‘보다 ’가상’이 우리 삶에서 더욱 결정적이며, 결국에는 현실이 무의미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처럼 뒤집기를 통해 그가 탐닉하고 있는 곳은 바로 ‘가상‘의 공간. 그것이 더욱 현실적이고 결정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통념처럼 현실은 힘이 있고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그가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미국이다. 예를 들면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에서 지젝은 종교라는 ‘유령’이 개인이나 집단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며 그 폭력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그 이면에는 미국의 네오콘에 대한 비판적 함의가 들어있는 것은 물론이다.

또 『이라크』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세계 제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비판이다. 즉 ‘세계 제국’이라는 일반적 통념과 달리 무자비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족국가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비난한다. 일반적 통념을 ‘거짓 구체성’이라고 명명한 그는 이 책을 통해 이라크 전쟁 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정치적 상황을 그리려 한다.

그는 스스로 좌파임을 자임한다. 그러나 정치경제학 중심의 정통 좌파는 아니다. 영화와 광고,대중문화, 정신분석학의 결합을 통해 가상에 탐닉하는 지젝은 오히려 근본적 급진주의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지적 상상의 즐거움을 주는 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우리 현실에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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